공상·민성·교통 등 주요 은행들
유럽은행이 수익 악화로 대출 줄이자
선박가격의 85%까지 빌려줘
올 리스대출 200억달러…33%↑

조선·해운 강국 노리는 중국
M&A로 '글로벌 해운 빅3' 우뚝
중국이 글로벌 선박금융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럽 은행이 선박금융에서 발을 빼는 사이 중국 은행들이 그 빈자리를 꿰차며 해운회사 대출을 늘리고 있다. 넘쳐나는 현금과 ‘해운강국’을 노리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금 넘치는 중국 은행… 유럽 제치고 해운금융 '큰손' 부상

◆유럽 은행 제친 중국 은행

중국공상은행(ICBC) 등 주요 중국 은행의 올해 선박리스(건조 및 운용 리스) 금액이 200억달러(약 21조6000억원)로 지난해보다 33% 이상 증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3일 보도했다. 이는 ICBC가 선박리스만 집계한 것으로 상호융자, 선박담보대출 등 다양한 선박금융 형태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시장조사업체 마린머니에 따르면 ICBC 민성은행 교통은행 자오상은행 등 중국 은행의 올해 선박금융 규모는 2000억달러에 이른다.

세계 최대 해운사 AP묄러-머스크의 쇠렌 스코 최고경영자(CEO)는 “전통적인 선박금융 강자들이 대출을 급격히 줄이면서 중국 자금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박금융시장 규모는 세계적으로 5000억달러(2014년 기준)가 넘는다. 기존 선박금융은 유럽 은행들이 주도했으나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중국 쪽 선박금융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노르웨이 DNB, 스웨덴 노르디아, 프랑스 BNP파리바가 여전히 선박금융 선두 자리를 지키곤 있지만 영국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로이드은행은 발을 빼고 있으며 독일 HSH노르드방크와 노르드-LB그룹은 해운 포트폴리오 규모를 대폭 줄였다. 과잉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으로 화물운임이 계속 하락하는 등 해운업계 침체로 해운대출의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해운컨설턴트인 바질 카라차스는 “선박금융시장이 이례적인 권력이동을 겪고 있다”며 “신규, 중고 선박 대출 모두 기존 유럽 은행에서 중국으로 대출회사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원리금 밀리면 선박 곧바로 압류

중국 은행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선박리스다. 중국 은행은 배 가격의 최대 85%를 빌려주고, 연 5.5%의 높은 이율을 매긴다. 기존 선박리스 업체들이 낮은 이율의 선취 수수료를 받는 것과 다르다. 유럽 은행은 원리금 상환이 밀리더라도 일정 기간 기다려주지만 중국 은행들은 곧바로 선박 압류에 나선다. 리스 선박이 첫 번째 기항지에 도착하면 화물을 모두 내리고 선박을 압류하는 식이다.

ICBC(330척) 민성은행(300척) 교통은행(260척) 자오상은행(150척)은 이런 방식으로 현재 1000척이 넘는 리스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시가 기준 236억달러 상당이다.

일부 해운사들은 중국 은행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아시아로 회사를 옮기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시장에선 선박주와 대출은행 간 친밀도가 상당히 중요한 점을 고려해서다.

선박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WSJ는 “해운업황이 안 좋아지더라도 중국 은행들은 압류한 보유 선박들을 중국 국영 해운업체로 넘기거나 정부 보조금을 받고 고철로 팔아치울 수 있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고 설명했다.

◆조선·해운업도 장악해

중국은 선박금융뿐만 아니라 해운업 전반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마소프트의 알리 스털링 회장은 “세계 조선의 4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으로선 선박금융을 확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영 해운사가 인수합병(M&A)으로 시장지배력을 키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2월 중국 해운사 1위(코스코)와 2위(차이나시핑그룹) 업체 간 합병으로 재탄생한 코스코는 또다시 세계 7대 해운사인 홍콩 오리엔탈오버시스해운사(OOCL) 인수를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2일 코스코가 OOCL 지분 68.7%를 63억달러(약 7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내용을 승인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코스코는 400척 이상의 선박, 290만TEU(길이 20피트 컨테이너)의 수송력을 갖추게 돼 머스크, 스위스 MSC에 이어 세계 3대 해운강자 입지를 다진다.

코스코는 올해 3분기 사상 처음으로 머스크를 제치고 수송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7~8월 선박과 항구운용 시스템이 사이버공격을 받아 머스크가 주춤한 사이 코스코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전년 대비 23%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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