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상업 활동이 전부는 아니다"… 예술혼 불태우는 명품의 자격
유행을 타지 않고 평생 하나쯤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여성이 ‘에르메스(Hermes)’를 꼽는다. 에르메스의 장인들이 재단하고 바느질한 1000만원이 넘는 가방은 수 개월을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에르메스 고유의 실크 스카프와 넥타이는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대표적인 선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에르메스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예술성,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심에 더 관심을 갖는다. 에르메스가 운영하는 재단과 아틀리에(공방)는 이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보여준다.
[명품의 향기] "상업 활동이 전부는 아니다"… 예술혼 불태우는 명품의 자격
◆켈리백·버킨백으로 유명해져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파리에서 시작한 에르메스는 처음엔 마구를 손으로 만들던 작은 공방이었다. 말을 탈 때 필요한 안장, 장신구 등을 직접 손으로 제작했는데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져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1867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1등인 금상을 받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가족 경영을 시작한 건 1880년대. 티에리 에르메스가 1878년 타계한 뒤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가업을 이었다. 그는 뛰어난 품질의 마구를 만드는 한편 매장을 번화가인 생토노레 24번가로 옮겼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러시아, 루마니아, 스페인 국왕을 만나 제품을 팔았고 지퍼를 유럽 최초로 가방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가방을 완벽하게 닫을 수 없었는데 1917년 지퍼 달린 가방 ‘볼리드백’을 출시하면서 ‘최초의 지퍼 달린 가방’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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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인 에밀 에르메스 때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다. 그는 1924년 미국에 갔다가 자동차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마구 중심의 생산품을 가방, 벨트, 의류, 손목시계 등 패션제품 전체로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브랜드 고유의 손바느질 기술은 그대로 살렸다. 1930년대 들어 지금까지도 에르메스의 베스트셀러인 대표 제품들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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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구용품을 넣는 용도로 만든 가방 ‘쁘띠 삭 오뜨’가 대표적이다. 작고 단정한 사각형의 이 가방은 1956년 유명 여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가 들고 등장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때부터 가방 이름이 ‘켈리백’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이 켈리백은 ‘사이즈별, 색상별로 소장하고 싶은 명품’으로 꼽힌다. 가방 1개를 완성하는 데 꼬박 18시간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완성된 가방엔 장인의 고유 ID와 제작연도, 데스크 번호 등이 새겨져 있다. 그것만 봐도 소비자들은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 배의 닻과 쇠사슬 등을 디자인으로 활용한 팔찌와 실크 스카프(1937년), 말굽 무늬를 넣은 실크 넥타이(1949년)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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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가 더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1984년 영국 영화배우인 제인 버킨이 비행기 안에서 가방을 뒤적이다가 에르메스 오거나이저(다이어리)를 흘린 것이 계기였다. 당시 옆자리에 있던 남성이 “가방 안 주머니에 넣어두지 그러냐”고 조언하자 제인 버킨은 “에르메스에서 주머니 있는 가방이 나온다면 그렇게 해야죠”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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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남성이 바로 에르메스 5대손인 장-루이 뒤마였다. 그는 제인 버킨을 위해 주머니 달린 가방을 만들었고, 이름을 ‘버킨백’으로 지었다. 버킨백은 켈리백과 함께 구매 후 1년 가까이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인기상품이 됐다.

◆예술가 후원하고 전시회 열어

에르메스의 예술성은 재단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에르메스는 상업적 판매 활동 외에 세계 문화, 예술, 교육환경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예술가를 존중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브랜드 정체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예술가 후원을 더욱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2008년 에르메스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브뤼셀, 도쿄, 싱가포르, 서울 등 세계 4곳에만 있는 아틀리에에서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도록 지원하고 있다. 주로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와 사진 전시를 해왔다. 최근에는 비주얼 아트, 공연 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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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코리아가 2000년부터 시상해온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은 재단이 설립되기 전부터 국내 예술가를 후원해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내 미술계를 후원하는 외국계 회사는 에르메스가 처음이었다. 이 미술상은 에르메스 재단 설립 이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창의적이고 역량 있는 국내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상은 장영혜, 김범, 박이소, 서도호, 박찬경, 구정아, 임민욱 등이 수상했다. 올해는 오민 작가가 상을 받았다. 오 작가는 4개월 동안 파리에서 연수과정을 밟은 뒤 내년 8월 국내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미술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은 서울 청담동 에르메스 도산파크점 지하에 마련된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된다. 이 공간은 1년 내내 전시회로 꽉 차 있다. 미술상 수상 작가는 물론 에르메스 재단이 선정한 3명의 작가 전시를 1년 동안 무료로 연다. 이달 8일부터는 베네수엘라 출신 작가 로사 마리아 운다 수키의 개인전 ‘롱드르가와 아옌데가의 모퉁이에서’를 열고 있다. 유명한 여성 작가 프리다 칼로의 옛집 ‘푸른 집’을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담았다. 프리다 칼로의 유년 시절과 비극적 사고와 결혼, 집을 두 번에 걸쳐 개축한 일, 여생과 죽음 등으로 나눴다. 전시는 총 54점의 드로잉과 56점의 페인팅, 이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구성했다. 리넨 소재 캔버스 위에 액자처럼 그림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내년 2월4일까지 청담동 에르메스 도산파크점 지하 1층 아틀리에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