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 기업인이 이끈다

파괴적 혁신 '넷플릭스트'
"한 달 7.99달러면 영화 무제한"
30~50달러 유료방송 가입자 이탈

이용자 데이터 기반 콘텐츠 제작
하우스 오브 카드·나르코스 등
전 세계 통하는 스토리 '광팬' 모아
가입자별로 다른 넷플릭스 첫 화면. 한경DB

가입자별로 다른 넷플릭스 첫 화면. 한경DB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했을 때 ‘넷플릭스트(Netflixed·넷플릭스당하다)’란 말을 쓴다. 1997년 온라인 주문 방식의 DVD 대여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창업 10년 뒤인 2007년부터 DVD 대신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에 ‘올인’하면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미국 전역에서 90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던 DVD 대여업체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2010년 파산 신청을 했다. 올초엔 미국 내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넘어섰다. 넷플릭스가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1억 명에 달하는 넷플릭스 ‘광팬’

넷플릭스는 한 달에 최소 7.99달러(약 9000원)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큼 영화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코드커팅(케이블TV 가입 해지)’을 늘렸다.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케이블방송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코드커터 가운데 57%가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에 코드커터가 대거 몰린 이유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다. 미국 유료방송 가입자는 월 30~50달러를 내야 한다.
"케이블TV선을 잘라라" 넷플릭스 가입자 1억명 돌파

하지만 가격 경쟁력 이상으로 넷플릭스 가입자 수를 늘린 건 콘텐츠 경쟁력이다.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급속히 증가한 건 시청자들이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재밌는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하면서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넷플릭스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대표작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판권을 구매해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을 하던 넷플릭스는 2012년부터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플랫폼이 커지면서 콘텐츠 제작사들이 라이선스 비용을 더 요구하자 ‘차라리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2013년 시즌1 방영 후 미국 드라마상인 에미상에서 감독상, 촬영상, 캐스팅상 등 3관왕을 차지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 무렵 넷플릭스 가입자는 3342만 명으로 이미 미국 케이블방송 HBO의 가입자 수를 넘어섰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기묘한 이야기’ ‘나르코스’ ‘지정 생존자’ 등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콘텐츠가 가입자를 1억 명까지 늘린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이 회사 안팎의 평가다.

데이터 분석해 콘텐츠 제작·추천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콘텐츠인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패턴 등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21세기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를 분석해 실제로 이익을 내는 기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메가폰을 핀처 감독에게 맡긴 것도 데이터 분석 끝에 내린 결정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네트워크’ 등 핀처 감독의 영화를 하나라도 접한 이용자들은 그의 영화를 모두 찾아서 감상했다. 한 시즌 13회 전체를 한 번에 업로드하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공 방식과도 잘 맞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콘텐츠 제작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에도 기존에 쌓아둔 데이터를 활용한다. 넷플릭스는 기존 시청 기록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용자 개인별로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기묘한 이야기’를 즐겨보는 사람이면 비슷한 류의 미스터리 스릴러인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좋아할 것이라고 추천하거나 ‘취향일치도(%)’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정기구독 모델의 성공 요인을 넷플릭스에서 찾았다. 월 정액제로 운영되는 넷플릭스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에 있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새롭게 보이도록 재구성해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밖에서도 통하는 스토리 발굴

코드커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콘텐츠 제작사가 넷플릭스를 이탈하는 계기가 됐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준 미국 내 스트리밍 독점권(2016~2018년 개봉작)을 거둬들이고, 코드커팅으로 케이블방송 시청자가 줄어들면서 감소한 콘텐츠 수익을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구축해 회복하기로 했다.

디즈니의 변심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 제작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을 택했다. 디즈니의 결별 선언 직후 인기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만든 제작자 숀다 라임스와 판권 계약을 맺었고, ‘킹스맨’ 원작 만화 출판사인 밀러월드를 인수했다.

콘텐츠 파워를 절감한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인다는 장기 목표를 세웠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며 “세계 최고 콘텐츠를 모아 모바일뿐 아니라 어떤 스크린에서도 즐길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넷플릭스의 야심은 정보기술(IT) 플랫폼 회사들도 자극했다. 아마존은 45억달러, 애플은 10억달러를 각각 투자해 자체 콘텐츠 시장에 승부를 걸었다. 프랑스 미디어그룹 비방디의 아르노 드 퓌퐁텐 CEO는 골드러시, 랜드러시, 오일러시에 이어 “21세기는 콘텐츠러시 시대”라고 규정했다.

세계 각국에서 발굴한 오리지널 콘텐츠는 미국을 넘어 시장을 넓히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 공개한 브라질 드라마 ‘3%’는 브라질 이외 지역에서도 히트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헤이스팅스 CEO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세계 가입자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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