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금융기술)산업은 개인의 일상에서 금융거래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휴대폰으로 송금하고 대출을 받으며,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고액 자산가들이 받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는 이 같은 혁신적 서비스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핀테크산업이 기존 산업의 낡은 규제에 얽매여 있는 탓이다.

은행 카드회사 보험회사 등 기존 금융업계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새로운 서비스를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구조다. 로보어드바이저가 대표적이다. 금융업계가 앞다퉈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자문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정작 개발업체는 ‘속 빈 강정’이다. ‘불완전 판매’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 업체의 비(非)대면 투자 일임을 금지하고 있어서다. 고객 영업을 위해 은행과 증권사 영업망을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기존 금융업계의 ‘하도급업체’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소액 해외송금 서비스 업체들은 은행권의 협조를 받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다. 개인 간(P2P)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리의 진영운 대표는 “자금력이 부족한 핀테크업체들은 규제장벽을 돌파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빚만 지는 경우가 많다”며 “나중에 과실을 따가는 건 기존 금융사들”이라고 꼬집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5일 열린 국제 핀테크 세미나에서 “규제당국은 혁신가들에게 빠르게 기회를 주고 오류는 수정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에서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