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뜨겁게 공유된다. 반면 실패한 사람의 사례는 알기 힘들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뒤 조용히 도시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귀농·귀촌 정착 실태 등의 자료를 토대로 ‘더농부’ 블로그에 5회에 걸쳐 소개된 ‘실패에서 배운다’ 시리즈를 상·하로 요약해 싣는다.

1. 귀농인에 대한 차별

[한경·네이버 FARM] 비닐하우스 설비 '바가지'…재배법 다르다고 '눈총'도
◆…귀농 투자금 ‘덤터기’ 쓴 사례=김형식 씨(52·가명)는 귀농할 때 비닐하우스 4개 동과 농기계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1억원을 썼다. 이 중 하우스에만 4000만원을 들였다. 하지만 이후 시세를 알아 보니 2500만원이면 충분했다. 기계와 차량도 비싸게 샀다는 것을 알았다. 김씨는 지역 시설업체가 시세를 잘 모르는 귀농인들에게 시가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호소했다. 또 시설 설치자금의 50%를 정부가 지원하면 지역 내 업자가 가격을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박이가 아닌 귀농인이라 차별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부 구할 때마다 사례하다=김천얼 씨(66·가명)는 귀농 후 감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철이면 인부를 구하기 위해 부녀회장 등 지역 내 명망 있는 사람들을 찾아 부탁했다. 그럴 땐 항상 사례를 해야만 했다. 그냥 말로만 부탁해선 인부를 보내주지 않았다. 이렇게 사례해서 확보한 인부들도 다른 토박이 농가 일을 다 처리하고 난 뒤 남는 시간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지역 관공서에서도 행정 지원을 토박이 주민에겐 쉽게 해주지만 귀농인들에겐 잘 안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2. 다른 농사법에 눈총받은 사람들

◆…친환경 농사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다=안성주 씨(35·가명)는 지역의 첫 블루베리 농가로 친환경 재배 방식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따가운 시선을 받았고 고립감도 많이 느꼈다. 특히 친환경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주민들의 간섭이 심했다. “어디 잘되나 보자”는 말에 안씨는 오기가 생겨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작목에 관해 함께 논의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움을 느꼈다. 결국 1차 귀농지역을 떠나 2차 귀농으로 지역을 옮겼다.

3. 토박이와의 갈등

◆…비위 맞추느라 스트레스 받은 사례=김후진 씨(57·가명)는 귀농한 지역의 어르신들 비위를 맞추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토박이 어르신들은 사생활에 참견이 많은 것은 물론 서운한 일이 생기면 시비를 걸고 조금이라도 책이 잡힐 만한 게 있으면 흉보는 일이 허다했다. 김씨도 힘들었지만 아내가 더 힘들어했다. 도시라면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농촌마을에서는 신경을 안 쓰고 살 수가 없었다. 관심사도 달랐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결국 김씨 부부는 이 지역을 떠났다.

4. 가족을 설득하지 못한 사람들

◆…‘기러기 아빠’ 생활하다 가족과 멀어지다=반석효 씨(45·가명)는 아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도시에 두고 홀로 귀촌했다. 반씨가 귀촌을 결심한 직접적인 이유는 사업 실패였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실패의 악몽이 자꾸 떠오르는 도시를 떠나는 게 더 급했다. 가족이야 주말에 자주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리가 멀고 서로 바쁘다 보니 막상 가족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족과 괴리가 커지고 있다고 느낀 그는 가족이 있는 도시로 돌아왔다.

◆…귀농 때문에 생긴 아내와의 불화=서울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던 김정규 씨(59·가명)는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쉰 살이 되던 해 귀농을 결심했지만 서울 생활에 익숙한 아내와 딸은 도시를 떠나기 싫어했다. 그러다 딸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김씨와 아내는 땅을 사 농장을 꾸리고 귀농했다. 하지만 귀농 후 부부싸움이 잦았다. 결국 아내는 홀로 서울로 돌아갔고 귀농 과정에서 겪은 갈등 때문에 부부 사이는 소원해졌다.

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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