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방치된 삼척 폐광산
3년째 방치된 삼척 폐광산
5일 강원 삼척역에서 차로 5분(2㎞)가량 산길을 오르자 화산 분화구처럼 파인 지형이 나타났다. 축구장 320여 개 크기인 230만㎡ 규모의 거대한 땅에 계단처럼 층층이 깎인 암벽에서는 석회석 가루와 흙먼지가 범벅이 돼 흩날리고 있었다. 1976년부터 석회석을 채굴하던 적노동 옛 동양시멘트 46광구다.
첨단 석탄발전소 ‘삼척 포스파워’ 조감도
첨단 석탄발전소 ‘삼척 포스파워’ 조감도
포스코에너지는 2014년부터 채광 종료로 폐광산이 된 이곳에 석탄화력발전소(삼척 포스파워 1·2호기) 건설을 추진해 왔지만 지난 5월 이후 사업을 전혀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탈(脫)석탄 정책을 이유로 석탄발전소 인허가 절차를 중단하고 입지와 사업 조건이 전혀 다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의 전환을 압박하면서다.

폐광산 오염 우려 커져

"석탄발전소 짓는게 친환경…LNG 전환 요구는 탁상행정"
부지 방문에 동행한 김창영 삼척환경단체연합 회장은 “석탄발전소를 빨리 지어야 삼척의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46광구 바로 옆 적노마을에 살고 있는 김 회장은 “엊그제 비가 와서 오늘은 먼지가 적게 날리는 편”이라며 “바람 부는 날이면 먼지가 산 중턱을 뿌옇게 물들일 정도”라고 말했다. 통상 환경오염 주범으로 몰리는 석탄발전소 건설을 삼척시 환경단체가 찬성하는 이유다.

김 회장이 광구 한복판에 빗물이 고여 40m 깊이로 형성된 거대한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고인 물에 군데군데 녹조가 끼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펌프를 동원해 물을 빼야 할 상황이었다. “물웅덩이의 석회석 침출수가 유출되면 식수원인 오십천이 오염되고 맹방해변에 백화현상이 발생해요. 앞으로 수위가 10m만 더 높아지면 침출수가 본격적으로 유출될 겁니다.” 그는 “여기에서 1주일도 살아보지 않은 외부 환경단체 사람들이 환경오염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석탄발전소 짓는게 친환경…LNG 전환 요구는 탁상행정"
더욱이 동해 북평발전소 등 요즘 새로 짓는 석탄발전소는 준공된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와 비교해 대기 오염물질 배출량이 30분의 1 수준에 그칠 정도로 친환경적이라는 설명이다. 2014년 준공된 인천 영흥 화력발전소는 탈황설비를 통해 황산화물(SOx)의 98.9%를, 전기 집진장치로 미세먼지의 99.9%를 걸러낸다. 삼척 포스파워 1·2호기는 영흥 화력보다 40% 이상 강화된 설계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삼척 주민 “누구 마음대로 바꾸나”

삼척에서 만난 주민 대부분은 낙후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석탄발전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3년 발전사업자 선정 조사에서도 삼척시민의 96.7%가 석탄발전소 건설을 찬성했다.

1970년대까지 석탄·석회석 광산업을 기반으로 인구가 20만 명을 웃돌던 삼척시는 주요 탄광이 폐광해 인구가 꾸준히 줄면서 올해 상반기엔 7만 명 선까지 무너졌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1%로 ‘초고령사회(20%)’에 접어들었다. 김병호 삼척상공회의소 회원사업부장은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노인만 남았다”며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삼척에 석탄발전소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세먼지를 줄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멀쩡하게 짓고 있던 석탄발전소를 LNG 발전소로 전환하라는 정부 정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소는 원래 수요지 인근에 건설해야 송전 과정에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석탄발전소는 해안가 등 송전 효율이 떨어지는 외곽에 건설하더라도 싼 비용으로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충분히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 주문대로 삼척 포스파워 1·2호기를 LNG로 전환할 경우 원거리 송전에 따른 영업수익 감소액만 20년간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부지 매입과 설계 등 석탄발전소 추진 과정에 들어간 5609억원의 매몰비용은 포스코에너지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 이 경우 포스코에너지는 발전소 부지값을 제외한 5158억원을 손실로 처리해 현재 180%인 부채비율이 740%까지 치솟아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연간 영업이익이 1000억원인 기업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회사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이 중단되면서 지역주민 반발도 커지고 있다. 삼척시민은 정부가 발전소 인허가 절차를 중단한 지난 6월부터 서울 광화문 등에서 모두 17차례의 상경 항의집회를 열었다. 자발적으로 수만원씩 회비를 내고 왕복 8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가고 있다. 김대화 삼척시 사회단체협의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명분(탈석탄)’을 위해 ‘백성(삼척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수년간 추진해온 발전사업을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삼척=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