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 네 번째)이 2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5대 그룹 경영자와의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현회 LG 사장, 박정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김 위원장,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왼쪽 네 번째)이 2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5대 그룹 경영자와의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현회 LG 사장, 박정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김 위원장,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월14일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될 수 없다”며 “4대 그룹을 찍어서 몰아치듯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정부 교체 후 재벌개혁 목소리가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상황에서 스스로 속도조절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그런 김 위원장이 넉 달 후 태도 변화를 예고했다. 2일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의 전문경영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기업집단국(9월 신설)을 본격 가동시켜 대기업 개혁을 전면에 내세울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제시한 것이 공익재단 전수조사와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조사다. 공익재단과 지주회사가 계열사 부당지원이나 총수일가 사익편취, 지배구조 강화에 이용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공익재단 조사, 삼성 겨냥하나

기업집단국은 다음달부터 대기업집단의 공익재단 전수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공익재단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증여세 등) 세제 혜택을 받고 있다”며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인수한 주식의) 의결권 제한 등 제도 개선안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기업 저승사자' 기업집단국 본격 가동… 공정위, 지배구조 정조준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대 주요 대기업은 39개 공익재단을 통해 79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상당수 공익재단 이사장이 대기업 총수다. 현행 세법상 공익재단은 발행회사의 지분 5%(성실공익법인은 10%)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고 기부받을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 총수들이 공익재단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편법 상속·증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돼왔다.

재계 일각에선 삼성이 ‘1차 타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은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꿈장학재단 등 4개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이들 공익재단의 그룹 계열사 출자액은 지난해 말 기준 3조6304억원이다. 현대자동차(3934억원), SK(248억원), LG(3518억원), 롯데(4180억원)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규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 이건희 회장에게서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직위를 물려받았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6.86%를 보유하고 있어 이 부회장은 증여세를 내지 않고 사실상 삼성생명 지분을 갖게 됐다는 것이 공정위의 시각이다. 공정위는 공익재단을 통한 총수의 보유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사 전환 독려할 때는 언제고”

기업집단국은 내년 상반기 공익재단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지주회사 실태조사에도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2015년에도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점검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점검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우선적으로 지주회사 수익구조와 관련한 공시를 상세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주회사가 브랜드 사용은 계열사하고만 거래할 수밖에 없는 등의 이유로 수익구조에 대해 계열사 부당지원이나 사익편취로 문제삼기는 쉽지 않다”며 “지주회사는 계열사와 50억원 이상 또는 자본금·자본총계 중 큰 금액의 5% 이상인 대규모 거래에 대해 공시하게 돼 있는데 이 기준을 강화 또는 폐지하거나 거래금액에 대한 산정기준 등도 함께 공시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역대 정부에서 기업 투명성 강화를 위해 지주사 전환을 독려해 많은 기업이 지주사 체제를 잇따라 도입하는 추세”라며 “정부가 바뀌자마자 지주사를 규제의 잣대로 들이대면 이미 전환한 기업들은 어떡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임도원/고재연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