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삼성전자(60,800 -2.41%)가 31일 발표한 주주환원 방안은 대담하고 파격적이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고 그동안 주주들이 보내준 신뢰에 화답하는 측면도 강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위험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너무 경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삼성전자가 총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성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을 도외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든다.
총수 부재 삼성전자 '주주 포퓰리즘'에 빠져드나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3년간 잉여현금흐름(FCF:free cash flow)의 절반을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에 사용하겠다고 주주들에게 약속했다. FCF는 매년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에서 비용, 세금, 투자 등을 제외하고 회사에 남는 현금을 뜻한다. 투자를 많이 할수록 줄어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의 FCF는 약 20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상 최대로 예상되는 연간 55조원의 영업이익을 크게 밑도는 이유는 평택 반도체공장, 하만 인수 등에 많은 투자금이 들어간 데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는 그 20조원의 절반인 10조원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에 사용할 예정이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삼성전자의 FCF는 내년에 30조~4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수준의 경영실적을 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투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서다. 만약 FCF가 40조원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20조원을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매년 9조6000억원 이상을 배당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올해 실적분에 대한 배당금(4조8000억원)보다 정확하게 100%를 늘린 것이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나머지 10조4000억원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투입하게 된다.

총수 부재 삼성전자 '주주 포퓰리즘'에 빠져드나

삼성전자의 이 같은 방침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2016년 11월의 주주가치 제고방안과 맥이 닿아 있다. 당시 이 방안은 삼성그룹 경영권을 공격한 글로벌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주제안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이 차지하는 금액 비중(총주주 환원율)은 2012년 5.2%에서 지난해 49.7%로 치솟았다. 가히 기록적인 급등이다.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애플 구글 아마존 도요타 지멘스 알리바바 등의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어느 곳도 이처럼 가파른 속도로 주주환원을 늘린 기업은 없다.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는 아예 배당을 한 푼도 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주주경영 강화가 아니라 주주들을 향한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삼성전자의 뛰어난 실적과 현금흐름에 비춰볼 때 이렇게 돌려주고도 충분한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는 전통적으로 경기변동성이 심하고 특정 업체의 장기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더욱이 한국은 북핵 등 지정학적 위험에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퍼주기’식 주주환원이 지속 가능할지,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성장동력 확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주주환원의 예측성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FCF를 계산할 때 M&A 금액을 차감하지 않기로 했다”는 발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30조원의 FCF가 발생하는 해에 10조원짜리 글로벌 M&A가 성사되더라도 FCF 금액에 변동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질 FCF가 M&A자금 10조원을 제외한 20조원임에도 주주들에게 30조원의 절반인 15조원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건재하고 이재용 부회장이 정상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방안을 내놓았을까. 세계 최대 네트워크장비업체인 시스코(시가총액 약 30조원)를 통째로 사들일 수 있는 돈을 3년치 배당금으로 감히 약속할 수 있었을까.

아마 발표 순서와 내용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주환원을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방향은 존중했겠지만 미래 생존을 위한 투자와 성장전략이 먼저였을 것이다. 오너는 배당 등으로 손쉽게 주주들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봐도 알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성장에 목이 마르다. 경쟁사들의 온갖 방해와 견제를 뚫고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지분을 확보한 것을 보라. 지금의 삼성전자에는 이런 필사적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향후 수익에 관계없이 무조건 대규모 배당을 하겠다는 발표는 오너십을 상실한 삼성전자의 심각한 방향착오이자 기업판 포퓰리즘이다.

조일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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