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엔시스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삼성중공업에서 분사한 선박자동화 설비 제조업체다. 왼쪽부터 이 회사 박상호 차장, 이태영 전무, 배재혁 대표, 정태경 전무, 송동호 부장. 에스엔시스 제공
에스엔시스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삼성중공업에서 분사한 선박자동화 설비 제조업체다. 왼쪽부터 이 회사 박상호 차장, 이태영 전무, 배재혁 대표, 정태경 전무, 송동호 부장. 에스엔시스 제공
삼성맨으로 직장생활을 한 지 26년 된 임원부터 3~4년차 사원까지 한꺼번에 ‘삼성’ 타이틀을 떼고 둥지를 옮겼다. 회사 규모는 줄었다. 연 매출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에서 1000억원 남짓한 중소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 분위기는 오히려 좋아졌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 9월1일 삼성중공업에서 분사한 에스엔시스(S&SYS) 배재혁 대표를 비롯한 100여 명의 직원들 얘기다.

◆“살아남을 자신 있다”

'삼성중공업 둥지' 탈출한 100인 "40조 시장 뚫겠다"
에스엔시스는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삼성중공업에서 떨어져나온 회사다. 작년부터 1년여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지난달 삼성과 결별했다. 1994년 이후 20여 년간 삼성중공업에서 해오던 사업을 정리한 셈이다. 에스엔시스는 삼성중공업이 최대주주로 있지만 일부 주식만을 소유한 독립 법인이다. 나머지 주식은 배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이 골고루 나눠 갖고 있다.

배 대표는 선박항해 자동화설비 등을 제조하는 삼성중공업 기전팀 팀장(상무)으로 조직을 이끌어왔다. 분사 얘기가 나오면서 함께 일했던 팀원들과 의기투합해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다. 에스엔시스를 택하지 않은 30%가량의 팀원들은 아직 삼성중공업에 남아있다. 대신 기전팀과 상관없던 14명의 직원이 자진해서 에스엔시스에 합류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도 “꼭 성공해서 만나자”며 기쁘게 응원했다. 배 대표는 “삼성중공업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위기의식보다 삼성이 아닌 다른 거래처가 무궁무진하다는 희망에 차있다”며 “삼성 시절부터 보유해온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들은 약 2000척의 선박에 설비제어 시스템을 공급하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배 대표는 “삼성중공업 내부 물량을 제외한 매출 비중을 5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독자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과의 거래도 당분간 유지된다. 기존 선주들에게 애프터서비스 등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최소 2~3년간은 에스엔시스와 삼성중공업의 파트너 관계가 이어진다. 배 대표는 “기존 거래처를 바탕으로 삼성 비중을 향후 30%까지 낮춰 자생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40조원 평형수처리 시장 노린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에스엔시스는 향후 급증하는 선박 평형수처리 시스템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선박 평형수란 선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선박 내부에 저장하는 바닷물을 말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2년 뒤부터 평형수처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관련 시장이 5년 안에 약 4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에스엔시스는 삼성중공업 시절 국내 대기업 최초로 이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다. 배 대표는 “국내 업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IMO 승인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해안경비대(USCG) 승인도 눈앞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삼성SDI와 함께 개발하던 선박용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를 비롯해 육상용 변압기, 배전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