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38만원 들고 상경… 이젠 연 70만 마리 판매' 오골계 대부의 좌충우돌 성공기
“파주에서 서울가는 첫차가 새벽 4시 반쯤 있었어요. 그럼 큰 가방에 오골계 20여마리를 넣고 그 차를 타는 거예요. 서울에 있는 식당이 셔터를 올리기도 전에 식당 앞에 도착해 오골계를 문 앞에 내려놓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당시엔 차 한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죠.”(김연수 소래영농조합 대표)

70만 마리. 김연수 대표(71)가 작년에만 판매한 오골계 마릿 수다. 국내 연간 오골계 소비량이 120만 마리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 대표의 오골계 농장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국내 1위 오골계 기업 소래영농조합법인(이하 소래)을 일궈낸 김 대표는 보양식으로 여겨지던 오골계를 일반 식품 시장에 소개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의 오골계 인생의 시작은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수 차례 위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 (공교롭게도 김흥국 하림 회장이나 한재권 조인 회장도 양계사업을 1970년대 시작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소래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의 생존 원동력은 대기업들의 공세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차별화였다”고 했다.

◆토종닭 농부가 오골계를 선택한 까닭

[한경·네이버 FARM] '38만원 들고 상경… 이젠 연 70만 마리 판매' 오골계 대부의 좌충우돌 성공기
1980년 김 대표는 고향 광주에서 38만원을 들고 상경했다. 광주에서 육계와 오리를 키우던 그는 사업 확장을 위해 수도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 땅값은 너무 비쌌어요. 제가 빌릴 수 있는 땅은 경기권이었어요. 시흥 소래읍에 정착해 회사 이름을 소래축산으로 지었죠.”

시장에서 병아리를 사와 닭으로 키워 파는 게 시작이었다. 기술도 많이 필요 없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토종닭을 판매하며 사업을 조금씩 키워갈 무렵 대형 축산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지 않았다. 토종닭 산업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 설상가상 양계장에도 문제가 터졌다. 무허가 계사(닭 사육장)라는 게 적발되기도 했고 계사가 불에 타는 일도 발생했다. 소래에서 파주로 계사를 이전하고 본사는 고양시 벽제동으로 옮겼다.

“대기업이 손을 대기 시작하니까 가격에서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밤을 지샌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995년 김 대표는 오골계 사육에 도전한다. 당시 오골계는 약 취급을 받았다. 몸에 좋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식당에서 먹거리로 판매되지는 않았다. 정말 몸이 허약해진 사람만 먹는 완전 보양식으로 여겨졌다. “시장성이 없어서 대기업들이 하지 않는 게 오골계였어요.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대기업이 안한다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틈새를 파고든 거죠.”

김 대표가 새벽 첫차를 타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다. 김 대표는 식당 주인들을 직접 설득했다. 영양성분을 중심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그는 토종닭보다 육질이 더 쫄깃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루에 고작 20마리 파는 것인데도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빠른 속도로 판매가 늘진 않았지만 오골계를 파는 식당이 꾸준히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차별화 2단계는 품종

오골계 판매가 늘어나면서 회사 경영은 안정됐다. 기업으로서의 외형을 갖추고 자금 융통도 수월해졌다. 망할 걱정은 최소한 하지 않게 됐던 시절이라고 김 대표는 회상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갔다. 품종이었다. 그는 소래만의 품종을 만들어 종계 단계부터 차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오골계와 토종닭 종자 연구를 시작했다. 오골계는 자신이 키우던 것 중 우수한 것을 선발했고 닭은 1998년 당시 마니커가 갖고 있던 천호인티그레이션의 천금계를 인수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매년 1세대씩 품종을 보존하며 육질이 더 쫄깃하고 더 빨리 자랄 수 있는 품종을 육성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7년이 지난 2015년 연구 결과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대한양계협회는 김 대표가 육성한 오골계와 토종닭 2개 품종을 순계로 인정했다. 순계는 종계를 생산하는 닭이다. 지난해에는 토종닭협회로부터 토종닭 품종 소래1호의 종계 등록 절차를 마쳤다.
[한경·네이버 FARM] '38만원 들고 상경… 이젠 연 70만 마리 판매' 오골계 대부의 좌충우돌 성공기
김 대표는 소래1호가 토종닭 산업 발전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의 토종닭이 70일만에 출하되는 것에 비해 소래1호는 50일이면 다 큽니다. 육계와 토종닭의 중간 정도 육질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요리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내년까지 4만~5만 마리의 종계를 분양할 계획이다. 현재 1위 품종인 한협3호의 연간 분양 마릿수는 30만 정도다. 1년 안에 시장 점유율을 15% 가량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산업화된 토종닭 품종은 한협3호가 유일합니다. 경쟁이 없는 시장이었죠. 그런데 이제 소래1호가 등장하면서 더 좋은 품종을 만들려는 선의의 경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2~3년 뒤에는 한협과 소래가 시장을 양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새로운 품종이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 질병이 잇따라 발생하는 상황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질병으로 인해 외래 품종 수입이 갑자기 막히거나 국내 품종 중 특정 품종이 일시에 집단 폐사하는 경우 닭 시장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종의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도 이번 품종 개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종닭 치킨? 가능성 있다.

김 대표에게 오골계와 토종닭 중에 어떤 게 더 중요하냐고 물었다. 그는 “현재를 생각하면 오골계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토종닭”이라고 했다. 현재 소래가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것은 오골계지만 전체 시장 규모로 보면 일반 닭이 오골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육계와 경쟁할 수 있는 토종닭 개발이 목표라고 말했다. 치킨 때문이다. 현재 국내 닭 산업은 치킨 시장이 좌우한다. 치킨을 만드는 닭이 바로 육계다. 김 대표는 “토종닭으로 치킨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면 육계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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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최근 ‘닭이 너무 작으면 치킨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의견이 식품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면서 큰 닭 치킨 시장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문제는 가격. 김 대표는 “육계보다 두 배 이상의 기간 동안 사료를 주며 키워야 하는 토종닭으로는 시장성이 없다”며 “결국은 새로운 품종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치킨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경제성이 있는 새로운 토종닭 품종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 대표의 새로운 목표다.

일반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대표는 2015년부터 이마트 국산의 힘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오골계 삼계탕에 이어 지난주 토종닭 삼계탕도 출시했다. 생오골계와 토종닭도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를 통한 매출이 전체의 30% 가량이다.

김 대표는 일반 소비자 시장 확대를 위해 본사 옆에 가공공장을 짓고 있다. 레토로트 포장을 직접 하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기존에는 설비가 없어서 외부에 위탁해서 포장했지만 이제는 전 과정을 직접 할 수 있게 됐다”며 “좀 더 정교하게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사 2층엔 체험관도 만들 예정이다. 미니 병아리 부화기도 3대를 설치하고, 닭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 김 대표는 “학생들이 와서 닭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좀 더 건강한 축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시작하던 50년 전에는 시설 기준도 없이 닭을 양계장으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한 후 그는 농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농장의 관리 매뉴얼을 확립하는 HACCP인증을 받았고, 항생제 사용을 최대한 억제해야 받을 수 있는 무항생제 인증도 연이어 받았다.

올해는 동물복지 농장을 준비하고 있다. 양계장에 횟대를 세우고, 평당 마릿 수 기준도 맞췄다.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소래의 닭과 오골계를 선택해주지 않을까요. 기업도, 소비자도 함께 건강해지는 거죠.”

고양=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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