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하게 당할 순 없다
사드·인건비 상승 등 영향
중국서 철수하는 기업 급증
회사 정리과정서 발생한 문제
기업 조사업체 통해 해결

기업 조사업은 컨설팅 일종
미국 GLG 매출 4억달러
보고서 건당 수억원 받기도
중국 기업 조사업체 BCC
퇴직자·전문가 중심 정보수집
기업조사업체 BCC 컨설턴트가 조사 대상 기업의 퇴직자로부터 기업 정보를 듣고 있다.  /BCC 제공

기업조사업체 BCC 컨설턴트가 조사 대상 기업의 퇴직자로부터 기업 정보를 듣고 있다. /BCC 제공

최근 중국 사업을 접기로 한 중소 의류 제조업체 A사는 하마터면 큰돈을 날릴 뻔했다. 중국 법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30억원 정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현지법인 대표를 맡고 있던 중국인은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A사는 결국 중국 기업 및 시장 조사 전문업체인 BCC에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해당 중국인 대표가 고급 자동차를 사들이는 등 대부분의 돈을 착복한 사실이 밝혀졌다. A사는 그중 상당한 금액을 회수했다.

컨설팅회사냐 흥신소냐

인건비 상승, 규제 강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영향 등으로 중국에서 철수를 검토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서 ‘기업 조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투자금을 떼이거나 지방정부의 보복성 과징금이 부과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단 은밀하게 조사를 벌인다는 점에서 이들 조사업체는 ‘기업 흥신소’로 볼 수도 있다.
"떼인 투자금 받아드립니다"…'중국 기업 흥신소' 성업

조사업체들은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둔 퇴직자들을 중점적으로 만나 조사 대상 기업의 정보를 수집한다. BCC가 A사의 어려움을 해결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BCC는 법인 대표와 불화를 겪은 경험이 있는 중국인 퇴직자를 중심으로 심층 면접을 했다. 해당 지 역 수입차 대리점과 럭셔리 매장을 돌며 법인 대표가 구매한 물품 목록까지 작성해 A사에 넘겼다. BCC 관계자는 “‘오래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뒀느냐’고 묻자 중국인 퇴직자가 눈물을 쏟으며 대표의 비위 내용을 밝혔다”며 “2008년부터 중국 기업과 시장을 조사하며 현지에서 접촉한 인물이 15만 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업 조사업은 기업 컨설팅의 일종이다. 1998년 창업한 미국 GLG가 관련 사업을 개척하면서 새로운 업종으로 자리잡았다. 선두 업체인 GLG의 매출은 지 난해 4억달러(약 4500억원)에 달했다. GLG를 비롯해 미국 크롤과 알파사이트 등도 활발하게 한국에서 영업하고 있다. BCC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등을 졸업한 중국인 3명이 2008년 설립한 회사로 법인은 케이맨제도에 있다.

이들 업체는 기업 퇴직자 및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보통 섭외 담당자 2명과 인터뷰 전문가 1명, 경영 컨설턴트 1명 등 4명이 한 팀이 돼 조사를 벌인다. 인터뷰 대상자에게는 수당을 지급한다. 이렇게 작성한 보고서는 건당 최고 수억원에 팔리기도 한다.

“한국 업체가 유독 많이 당해”

2010년 이전만 하더라도 투자 대상 기업의 정보를 알려는 금융회사들이 주로 조사업체 서비스를 이용했다. 2011년 실적을 부풀린 것으로 밝혀진 중국 최대 벌목업체 시노포레스트가 대표적이다.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 카슨 블록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업 조사업체 머디워터스를 통해 이를 폭로했고, 캐나다 토론토증시에 상장된 시노포레스트 주가가 폭락하는 과정에서 공매도로 높은 수익을 챙겼다.

현지업체와 합작해 중국에 호텔을 세운 국내 B사도 지분 정리 과정에서 기업 조사업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현지업체가 호텔 매출을 축소해 지분가치를 낮게 평가하려 한다는 심증은 갔지만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조사업체들은 퇴직자를 중심으로 증언을 취합하는 한편 해당 호텔의 시트 세탁업체를 조사했다. 하루에 몇 장의 시트를 빨았는지 알면 호텔의 대략적인 영업 실적을 파악할 수 있어서다. B사는 이 같은 데이터를 근거로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김세훈 BCC 아시아태평양지역 지사장은 “일본 기업들의 의뢰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유독 한국 업체들이 중국에서 많이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때는 훨씬 더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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