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의 마지막 쓴소리 "文 경제정책에 '시장'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없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사진)이 24일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전격 선언하면서 정부를 향해 작심하고 내놓은 ‘쓴소리’다. 김 회장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정통 관료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경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으면서 소신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는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힌 뒤 1시간여 동안 이뤄진 간담회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 “시장을 활성화하지 않고 경제를 활성화한 국가가 이 지구상에 단 하나라도 있느냐” “기업 경쟁력에 무관심한 국가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시장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시장이라는 단어를 쓰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김 회장은 “글로벌 시각에서 다른 국가들이 어떤 정책을 펴는지, 특히 한국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선진국이 어떤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지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우리끼리만 경제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국 기업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김 회장은 새 정부 경제 정책이 본인 생각과 다르지만 그동안 자리를 유지해온 이유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퇴임하는 전통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물러나는 이유는 “최근 정부가 사임을 희망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무역협회는 민법상 사단법인으로 민간 경제단체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정부가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

김 회장은 본인의 후임자 선정에 대해 “정부의 의사 표시는 비공식적, 관행적인 것이지만 적정한 수준에서 정부와 협조는 필요하다”면서도 “협회의 전폭적 환영을 받을 인사를 선정하고 추천하는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또 회장단, 이사회 등 공식적인 회장 선출 기구에 대해서는 “깊은 책임의식을 지니고 회장으로서 충분한 자격 요건을 갖춘 인사가 후임 회장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했다.

김 회장 후임으로는 문재인 선거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79), 홍재형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장관(80),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67)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전 전 원장은 무역협회장 내정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