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을 두 달 새 5조원 가까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대출 문턱을 높인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으로 개인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지자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 대출을 대폭 늘린 결과다. 지난달 정부가 규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자영업자 대출을 늘리지 말 것을 주문했는데도 증가세는 가팔랐다.
은행들, 자영업자 대출 두 달 새 5조 늘렸다
자영업자 대출 늘리는 은행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국민·우리·KEB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9월 말 기준)은 169조444억원으로, 두 달 새 4조7542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4조5085억원)보다 많았다.

지난 1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잔액(155조1203억원)과 비교하면 4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무려 13조9241억원가량 증가했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1조6244억원으로 증가폭이 가장 컸다. 신한은행(1조1291억원)과 우리은행(1조25억원) 등도 1조원 안팎씩 자영업자 대출을 늘렸다.

개인사업자 대출이 급증한 건 정부가 개별 은행들의 가계 대출 총량 규제에 나선 데다 8·2 대책까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개인 대출 자산을 늘리기 어려워진 시중은행들이 기업 대출, 특히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 대출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는 분석이다.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7월 말 298조7118억원에서 9월 말 305조2751억원으로 6조5633억원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 대출 증가폭(5조9103억원)보다 크다. 이 중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이 72.4%를 차지한다.

은행권 전체(한국은행 집계치)로는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개인사업자 대출 순증액이 20조9000억원이었다.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할 때 이달 말께 개인사업자 대출은 지난해 전체 증가액(21조9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고강도 대출 억제책 나올까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 중 자영업자 대출에 집중하는 이유는 일반 법인 대출보다는 리스크(위험)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은)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대출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큰 데다 담보 대출 위주여서 우량 고객을 확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 대출은 한 번 부도나면 손실 규모가 막대하지만 개인사업자 대출은 손실이 나더라도 수천만~수억원대에 그친다는 점 때문에 은행이 선호하는 추세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정부 규제로 대출 한도가 줄어들자 다주택자 가운데 상당수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뒤 사업자 대출을 받는 방법으로 추가 대출을 받고 있다는 게 은행권 분석이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개인사업자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대기업 대출이 줄어들면서 중소기업 대출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개인사업자 대출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 은행 여신담당 관계자는 “연초 대출자산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우량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을 늘려왔는데,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팔라 속도 조절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자영업자 대출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추가 규제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자영업자들의 연간 매출, 수입 등을 따져 소득 대비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