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힐링
행사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을 봤습니다.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친구, 작은 체구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가방을 메고 원룸텔로 들어가는 재수생,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지친 표정의 대학생. 그냥 평범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닌 기자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당시 사회는 경직돼 있었고,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 시대를 지배한 정서는 낙관이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그 희망대로 사회는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커피 한 잔의 힐링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런 낙관을 품고 무작정 꿈꾸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모르게 무책임하게 느껴집니다. 구조적인 원인도 있을 테고, 정서적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작은 위안은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입시, 취업에 지친 젊은이들이 하루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커피를 떠올렸습니다. 커피 마시고, 음악을 즐기고, 강의도 듣고, 영화까지 볼 수 있는. ‘커피 페스티벌’을 기획한 이유입니다.

주제를 커피로 정한 것은 커피의 탄생, 커피가 지닌 코드 자체가 위로와 활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500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한 목동이 처음 발견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염소들이 먹고 갑자기 힘을 내던 이상한 열매. 전쟁 때 지친 병사들에게 나눠주던 비상식량. 이후 1000년간 이슬람 문화권에 갇혀 있다 유럽으로 나와 지식인들의 지적 자극제가 된 그런 음식.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젊은이들은 답답한 원룸을 탈출해 커피가게로 나왔습니다. 그곳에 책과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얼마 전 친구처럼 지내는 홍보하는 분들에게 술자리에서 이런 행사의 취지를 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커피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행사를 후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후원이니 뭐니 이름도 넣어줄 필요 없어요”라는 말과 함께. 중3 아들 녀석에게도 행사 얘기를 했더니, 그 녀석은 “음… 나도 위로가 필요하긴 하지. 힘들어하는 애들 한 30명 데리고 갈게”라고 했습니다. 중학생 30명. 왠지 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렇게 이번 주말 잠실에서 커피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