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창간 53주년
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2)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 고착화
“1998년의 봄은 내 일생에 가장 아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1998년 초부터 본격화된 기업·금융·노동·공공 등 이른바 ‘4대 부문 개혁’을 회고하는 부분에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 국가 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겼지만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환란은 언제든 재발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 DJ는 자서전에서 위기감 속에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얼마나 강도 높게 진행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런 총평을 덧붙였다.
20년 전 '전쟁' 같았던 4대 부문 개혁, 20년 후 '약발' 떨어진 경제체질 개선

거세게 몰아붙였던 개혁

4대 부문 개혁은 DJ의 말처럼 ‘전쟁같이’ 치러졌다. 정부 통제와 보호 아래 있던 기업과 금융부문은 ‘자유 경쟁’과 ‘책임 경영’이란 두 원칙에 따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당시 평균 400%가 넘던 부채비율을 1999년 말까지 무조건 200% 밑으로 끌어내려야 했고, 현대 삼성 등 대기업은 ‘빅딜(사업맞교환)’이란 이름 아래 경쟁력이 약한 사업부를 강제로 내놓아야 했다.

1997년 말 2101개에 달했던 금융회사는 이듬해 연말까지 진행된 1단계 구조조정까지 659개가 문을 닫았다. 세 곳 중 한 곳꼴로 사라진 것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국제적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바꾸는 작업도 병행됐다. 정리해고법과 근로자파견법이 처음 도입됐고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기제’로 노사정위원회도 구성됐다. 정부와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한국통신(현 KT) 등 8개 공기업이 민영화됐다.

외부로부터 강제된 ‘축복’

4대 부문 개혁은 외부 충격에 의한 강제적인 구조개혁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랬다. 1998년 -5.7%였던 경제성장률은 1999년 11.3%, 2000년 8.9%로 급반등하면서 외환위기를 조기 극복하는 발판이 됐다.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높인 한국 기업들의 수출이 급증했고, 은행권도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1997년 7.0%에서 2005년 12.4%까지 높아질 정도로 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

IMF도 한국의 4대 부문 개혁을 세계 구조개혁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IMF는 지난해 2월 발표한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에서의 구조개혁과 생산성 성장’이란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덕분에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2000~2008년 다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하위인 노동부문 경쟁력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다시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4대 부문 개혁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추가적인 구조개혁에 손을 놓고 있으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경고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 이후 정부마다 노동, 공공기관, 금융, 교육(대학) 등에 중점을 두고 구조개혁에 나섰지만 이로부터 발생하는 고통을 정치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구조개혁에 실패했다”며 “지지부진한 구조개혁의 후유증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노동부문의 비효율이 극에 달했다는 평가가 많다. ‘근로자의 능력 부족’ 등 해고 사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정규직의 정리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고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어렵사리 도입했던 ‘양대 지침’(저성과자 해고 허용,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을 새 정부 들어선 파기했다.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5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68%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기업 비효율 ‘점증’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기업의 고비용 구조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한국의 단위생산인건비는 2006년부터 일본보다 높아진 뒤 갈수록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선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 기업(이자보상배율 100% 미만 기업)이 2011년 1736개(전체 외부감사기업 중 9.34%)에서 2015년 2359개(12.7%)로 늘어난 게 단적인 예(산업연구원 분석)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공급과잉 현상 심화 등으로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부실은 커졌지만 경직된 노사관계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된 탓이다.

금융부문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은행 수는 급감한 가운데 정부가 진입규제를 엄격하게 유지하다 보니 은행권은 과점 체제가 형성되면서 사실상의 공기업으로 전락했다.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심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사양산업에서 성장산업으로 자원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고 경제의 유연성도 높여 성장동력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공동 기획 : FROM100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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