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창간 53
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의 경고
"노동·경영환경 퇴보… 이대로 가다간 제2 외환위기 온다"

“한국 경제는 풍전등화 상태인데 정부, 기업, 노동계 모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사진)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7년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독감에 걸린 게 아니라 만성질환의 허약 체질인 이른바 ‘노인병’에 걸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원장은 수년째 제2 외환위기론을 주창하고 있다. 외화 유동성과 기업 재무구조를 제외하면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노동 환경, 경영 여건, 산업 활력도, 잠재성장률, 가계부채 등 대다수 경제 지표가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 원장은 “위기라는 건 누구 한 사람, 특정 조직의 실패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고 쌓여 있는 수십 개 혹은 수백 개 위험 요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발생하는 결과물”이라며 “위기의 전조 증상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1970년대 한국과 함께 부상한 싱가포르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넘는데 한국은 2만달러대에 10년째 머물고 있다”며 “서서히 멍들어가는 한국 경제를 되살리려면 경제를 지탱할 기업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원장은 “중국 기업들이 저(低)임금과 기술력을 앞세워 생산 역량을 빠르게 키우고 있어 한국의 산업 기반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며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은 이미 성숙 단계로 들어선 탓에 지금의 산업구조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차라리 위기가 터지면 변화에 속도가 붙겠지만 ‘개구리가 서서히 끓는 물에서 죽어가는 것’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에는 미리 대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성장 엔진을 되살릴 처방으로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꼽았다. 권 원장은 “기업의 노력이 우선이겠지만 규제 패러다임 전환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수”라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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