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IT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 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식품업계에선 드물다.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서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있었던 M&A 한 건은 커피 마니아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세계 최대 음료회사인 스위스 네슬레가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 보틀’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네슬레는 블루보틀 지분 68%를 약 4억2500만달러(약 4800억원)에 사들였다. 블루보틀 매장은 미국과 일본에 총 50여개 뿐. 블루보틀은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인 제임스 프리먼이 2002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한 차고에서 창업한 회사다. 핸드 드립으로 느리게 내려주는 커피 맛에 반한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유명해졌고,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며 빠르게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마니아의 브랜드였던 블루보틀이 세계적인 음료 회사에 넘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블루보틀 홈페이지에는 ‘다시는 블루보틀을 가지 않겠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독립 로스터가 자본에 무너졌다’는 내용의 글들이 쏟아졌다. 네슬레를 ‘악마의 기업’에 비유한 이도 있었다.
네슬레가 블루보틀을 인수한 이유는 명확하다. 네슬레는 네스카페 브랜드와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 등 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최강자다. 커피 전체에서 시장 점유율이 22.4%다. 하지만 최근 스페셜티 등 고급 커피 시장이 성장하며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에 따르면 블루보틀 등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가 미국 전체 커피 소비의 15~20%를 차지한다. 미래 소비자인 18세~34세의 밀레니얼 세대가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부모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미국커피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세대의 15%는 주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32%는 에스프레소로 만든 음료를 즐긴다.
네슬레 정도면 블루보틀 같은 작은 회사 쯤은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인수를 했을까. 카미요 그레코 JP모건 글로벌 컨슈머 부문 대표는 “블루보틀을 가는 건 단순한 카페에 가는 게 아니라 예술가의 스튜디오를 가는 것과 같다”면서 “네슬레에는 모든 게 있지만 프리미엄, 그리고 마니아들을 유혹할 만한 틈새 브랜드가 없다”고 말했다.
블루보틀이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면서 그 동안 수 많은 대기업이 인수 제안을 했다. 블루보틀 고유의 장인 정신을 내세웠던 창업자 프리먼은 왜 하필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거대한 네슬레에 회사를 팔았을까. 네슬레는 블루보틀 인수에 수 개월을 공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이언 미한 블루보틀 최고경영자(CEO)는 어느날 갑자기 네슬레 CEO 마크 슈나이더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슈나이더는 단숨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뉴욕으로 넘어왔다. 미한은 “슈나이더와 브루클린 곳곳을 돌아봤고, 부쉬윅의 로스터리도 소개했다”고 말했다. 얼마 후 프리먼 회장과 미한 CEO는 네슬레 본사가 있는 제네바 호수로 초대 받았다. 미한은 “우리는 당시 블루보틀을 팔 생각이 없었고, 그저 초대에 응해 그곳에 갔을 뿐이다”면서 “슈나이더가 커피를 대하는 방식, 네슬레가 우리의 커피를 인지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기업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밥 로스(미국 화가)의 풍경화 같은 제네바 호수 앞에서 매각을 결정했다”며 “네슬레가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준다는 약속을 했고, 슈나이더의 노력에 매료당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블루보틀이 당장 글로벌 매장을 확장하기보다 캔이나 병 음료 형태의 RTD(Ready to Drink) 시장에서 먼저 테스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콜드브루 등은 자체 음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블루보틀 매장에서는 바리스타들이 일일이 손으로 커피를 천천히 내려주는 방식인 만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월마트가 보노보스와 모드클로스를, 유니레버가 달러셰이브클럽을 인수한 것처럼 유통업계 전체적으로 거대한 공룡이 스타트업을 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며 “그러나 모든 사례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고, 블루보틀도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M&A는 맥주 업계에 많았다. 세계 최대 주류 회사인 AB인베브는 시카고 수제맥주 구스아일랜들와 시애틀의 엘리시안 브루잉, LA의 골든로드브루잉 등을 인수했다. 하이네켄도 페탈루마의 라구니타스 브루잉과 몬스텔레이션브랜드을, 멕시코의 코로나는 샌디에이고의 벨라스트포인트브루잉을 품에 안았다.
블루보틀이 네슬레에 인수되면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건 스타벅스다. 지난 20년 간 전 세계 매장에서 ‘균일한 맛과 서비스’로 승부해온 스타벅스에게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성장은 위협일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현재 230억달러(약 26조3695억원)인 미국 스페셜티 커피 시장 규모는 5년 뒤 280억달러(약 32조102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하워드 슐츠는 이를 대비하듯 지난해부터 ‘고급 커피 바’형태의 리저브바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앞으로 수백 개의 리저브 매장을 내고, 미국과 중국 등에 플래그십 로스터리 매장을 낸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가 적극적인 반도체 감산 대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택했다. 수요 위축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올 상반기 반도체 사업에서 ‘조(兆) 단위 적자’가 유력한 상황에서 나온 최고위 경영진의 결정이다. 단기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높여 돌아올 호황기에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된다.삼성전자는 31일 지난해 4분기 확정 실적을 공개했다. 4분기 매출(70조4600억원)과 영업이익(4조310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2%, 68.9% 줄었다.반도체 불황이 영업이익을 끌어내렸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2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6.9% 급감했다. 메모리사업부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재고가 쌓인 고객사가 구매를 줄이면서 D램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에만 34% 급락한 영향이 컸다.실적 급감에 부담을 느낀 삼성전자 경영진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량을 조절해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을 검토했다. 감산하면 공급량이 줄어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멈추고 수요가 살아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이날 공개한 결론은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콘퍼런스콜에서 “최근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투자(CAPEX)는 전년(약 48조원)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고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반도체 생산량 조절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술적 감산’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생산라인 효율화와 첨단 공정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라며 “단기적으로 비트(생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른바 소유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연임하는 문제에 관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 정부 개입의 적정선에 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윤 대통령이 직접 기업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주요 금융지주회사와 KT, 포스코홀딩스 CEO 등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지난해 12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소유분산기업의 ‘셀프 연임’을 비판한 데 이어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관련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식 ‘적폐 청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셀프 연임 누구 맘대로”정부 관계자들은 ‘현직 경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적용해서 임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타당하냐’는 부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현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를 우선 심사하도록 제도화한 KT 등을 지적한 것이다. 구현모 KT 대표는 작년 말 이로 인한 논란이 불거지자 경선을 자청하기도 했다.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30일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라는 취지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31일 “좀 더 나은 거버넌스를 통해서 더 높은 수익을 돌려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정 후보나 인사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부당하게 전리품 취급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시장 침체에도 애플 등에 스마트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공급을 늘리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매출 34조3800억원, 영업이익 5조9500억원을 기록했다고 31일 공시했다. 2021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8.4%, 영업이익은 33.4% 증가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17.3%로, 이날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 모든 사업 부문을 통틀어 가장 높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자회사로 삼성전자 연결 기준 실적에 포함된다.경기 침체 장기화로 대부분의 기업이 주저앉은 지난해 4분기에도 ‘뒷심’을 발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4분기 9조3100억원의 매출과 1조8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실적 개선의 일등 공신은 스마트폰용 OLED다. 특히 애플 아이폰14프로 시리즈에 패널 공급을 확대한 영향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아이폰14프로에 고부가가치 제품인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OLED 패널을 납품했다. 업계에선 아이폰14프로 패널의 70% 이상을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삼성전자 스마트폰은 판매량이 주춤했지만, 기존 패널보다 가격이 높은 폴더블폰용 패널 공급을 늘려 수익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