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기산업이 위기다. 업계 1위인 한국도자기는 공장을 파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행남생활건강(옛 행남자기)은 증권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되며 파산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가품 시장에서는 해외 브랜드에 밀리고, 저가품 시장에선 중국산 등에 치이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크다. “이대로 가면 한국산 도자기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리포트] 외국산에 잠식 당한 위기의 '도자기 한국'
◆외국산이 판치는 국내 도자기 시장

국내 주방용품 시장 규모는 5조원대. 이 중 도자기 식기 시장은 5000억원 정도다. 행남생활건강 한국도자기 등 주요 도자기 업체의 업력은 70년이 넘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 중국 등 해외 주방용품 회사들이 국내 도자기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다. 국내 ‘빅3’로 불리는 한국도자기 행남생활건강 젠한국 3사는 5000억원 규모의 도자기 시장에서 지난해 1000억원대도 차지하지 못했다. ‘도자기 종주국’인 한국에서 외국산 점유율이 80%를 넘었다.

한국도자기와 행남생활건강의 사정은 좋지 않다.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공장이 있는 젠한국과 달리 두 회사는 2011년부터 매출과 영업이익이 계속 줄었다. 한국도자기는 충북 청주에 본차이나(소뼈를 갈아 만드는 도자기) 공장 두 곳, 슈퍼스트롱(강도가 높은 도자기) 공장 한 곳 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실적이 악화되자 슈퍼스트롱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지난 8월엔 제토(도자기용 점토) 공장 부지를 약 200억원에 매각했다. 행남생활건강은 지난달 15일 채권자가 채무변제를 요구하며 파산신청을 내 주식 거래가 정지됐지만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있다.

◆시장과 트렌드 변화에 대응 못해

몇 년 전부터 도자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신혼부부가 크게 줄었다. 식구 수가 줄고 외식문화가 자리 잡은 탓이다. 식기 소비패턴도 저렴한 제품을 사다 쓴 뒤 자주 교체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대형마트는 중국산 저가품을 많이 판다. 도자기를 고수하는 소비자들은 포트메리온, 코렐, 앨버트, 로열코펜하겐 등 해외 제품을 선호한다. 영국 브랜드 덴비는 최근 5년간 본국을 제외하고 매출 증가폭이 가장 큰 국가가 한국이었다.

반면 한국 업체들은 백화점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도자기는 작년 롯데백화점 본점을 마지막으로 모든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도자기 회사들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조직 문화나 경영 방침도 보수적”이라며 “질질 끌려다니다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고 말했다.

‘내부 분열’도 원인으로 꼽힌다. 가족회사였던 한국도자기는 2004년 가업승계 과정에서 갈등이 생겼고, 이에 반발한 고(故) 김종호 창업주의 4남 김성수 전 연구실장이 독립해 젠한국을 설립했다. 행남생활건강은 도자기 사업 외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다 위기를 맞았다. 김유석 전 대표 취임 이후 태양전지, 로봇청소기, 화장품, 의료기기 등 사업 다각화에 제동이 걸렸고 매각설에 휩싸이다 결국 2015년 한 인터넷방송 회사에 팔렸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