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엠 트렌치코트를 입은 배우
 박신혜.(사진 = 이랜드)
로엠 트렌치코트를 입은 배우 박신혜.(사진 = 이랜드)
낮 햇살은 뜨겁지만 밤엔 찬 바람이 몸을 파고드는 가을입니다. 이런 날씨에 떠오르는 옷, 바로 트렌치코트입니다. 셔츠나 블라우스, 티셔츠까지 어디에 걸쳐도 멋을 낼 수 있는 신박한 아이템이죠.

트렌치코트의 탄생은 영국 브랜드 버버리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트렌치코트를 개발한 사람이 버버리의 창업자 토머스 버버리이기 때문이죠. 트렌치코트가 버버리 코트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때는 1856년. 토머스 버버리가 영국 햄프셔 지방에 포목상을 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나 지금이나 비가 많이 오는 영국에선 레인코트가 필수였습니다. 방수를 위해 고무 재질로 레인코트를 만들던 때입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무거웠죠.

토머스 버버리는 '스목 프록(smock frock)'이라는 옷감에 주목합니다. 당시 농부나 목동들이 즐겨 입던 옷감이었는데 다른 소재보다 습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을 발견한 거죠.

1879년 그는 방수기능과 우수한 통기성을 갖춘 소재 '개버딘(Gabardine)'을 개발합니다. 개버딘은 순례자가 입는 겉옷을 뜻하는 스페인어 '카발디나'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1888년에는 특허도 냈습니다. 방수 처리를 한 면사를 이용해 직조한 후 다시 한 번 방수처리를 거쳐 뛰어난 방수 기능을 자랑했습니다. 당시 무겁던 레인코트를 대신해 인기를 끌었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이 코트를 지금 본다면 아무도 트렌치 코트를 떠올리진 못할 겁니다. 개버딘은 지금의 트렌치코트와는 달리 점퍼 형태였거든요. 지금의 트렌치코트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900년대 들어섭니다.
군복으로 활용된 버버리 트렌치코트. (자료 = 버버리 홈페이지)
군복으로 활용된 버버리 트렌치코트. (자료 = 버버리 홈페이지)
트렌치코트의 인기가 본격화한 건 비 오는 런던이 아닌 전쟁터에서였습니다. 트렌치코트의 트렌치는 바로 '참호'를 뜻합니다.

토머스 버버리는 1902년 1월 영국 왕실의 허가를 받아 육군성의 감독 하에 새로운 형식의 군복을 만들었습니다. 타이로켄(Tielocken) 코트가 지금의 트렌치코트의 형태였는데요. 개버딘 소재를 사용해 단추 없이 벨트로 앞을 여미는 디자인이었습니다.

기능성 견장, 허리띠, 디링(D-ring) 벨트 등을 더한 형태였죠. 소매 끝 벨트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어깨 견장은 총이나 망원경을 고정시키기 위해 둔 것이었습니다. 어깨를 덮은 천(스톰 플랩)도 사격 시 반동을 줄이기 위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 코트는 영국군에 독점 납품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 서부 전선에서부터 보급된 트렌치코트는 곧 모든 전선으로 퍼졌습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버버리가 영국 군대에 납품한 트렌치코트는 50만벌에 달했습니다.

전쟁 중반부터 트렌치코트엔 대중화 바람이 붑니다. 트렌치코트와 유사한 디자인이 시장에 쏟아졌기 때문이죠.

트렌치코트는 여성들의 마음도 파고들었습니다. 1917년 잡지 '더 젠틀우먼(The Gentlewoman)'에 실린 광고를 한 번 볼까요.

엘버리 사는 '전쟁 노동자의 코트'라는 제목의 광고를 통해 군인들의 트렌치코트를 구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광고를 통해 "그녀는 엘버리 사의 옷을 입고 모든 종류의 날씨와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옷은 방수가 잘 되며 군인들의 트렌치코트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실용적입니다"고 밝혔죠.

또 전쟁 이후 전직 장교들이 제대 후에도 평상시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으면서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영화를 통해 트렌치코트는 세계적인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1960년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햅번은 트렌치코트을 입고 고독한 여주인공 역할을 소화해냈죠.

한국에선 1986년 개봉한 영웅본색이 대표적인데요. 배우 장국영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성냥개비를 입에 문 장면이 떠오르네요.

트렌치코트는 남녀 모두에게 봄이나 가을 환절기면 찾는 아이템이 됐습니다. 원피스형 트렌치코트, 조끼형, 짧은 재킷형 등 다양한 스타일의 트렌치코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죠.

올 가을엔 오버사이즈 트렌치코트, 체크무늬 트렌치코트가 인기를 끈다고 하는데요. 겨울이 성큼 오기 전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