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연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연속주조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주물을 동그란 봉 형태로 뽑아내 연주봉을 제작하면 엘오티베큠 등 진공펌프 제조사들이 펌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왼쪽)으로 가공한다.  /태경연주 제공
태경연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연속주조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주물을 동그란 봉 형태로 뽑아내 연주봉을 제작하면 엘오티베큠 등 진공펌프 제조사들이 펌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왼쪽)으로 가공한다. /태경연주 제공
인천 경인주물단지에 있는 태경연주는 연매출 108억원의 작은 기업이지만 국내 유일의 주물 연속주조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연속주조는 제철소에서처럼 주물을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길게 뽑아내는 것으로, 철강과 달리 뚝뚝 끊어지는 성질을 지닌 주물로는 좀처럼 구현하기 힘든 기술이다. 남다른 기술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았지만 설비투자 확대가 급선무였다. 결국 2차 협력회사로서 관계를 맺고 있던 삼성디스플레이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는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로 이어졌다.

투자비 어떻게 아꼈나

삼성디스플레이와 꿀조합…쇳가루·불꽃 튀던 태경연주가 달라졌다
태경연주가 제작한 연주봉은 엘오티베큠과 에드워드펌프 등 삼성 1차 협력사들에 공급돼 진공펌프의 핵심 부품으로 가공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을 위해서는 공기를 뽑아내 클린룸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진공펌프 역할이 중요하다. 보통 주물업체들이 거푸집에 넣어 식혀 만든 연주봉은 내부 밀도가 일정하지 않아 진공펌프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해외에서 연주봉을 수입해 쓰던 에드워드펌프 등은 2011년 태경연주의 기술력을 인정해 연주봉을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과 한 다리 건너 2차 협력사가 된 것이다.

해외에 제품을 홍보하는 영어 홈페이지를 개설해 호주와 쿠웨이트 등 해외에서도 주문이 잇따르자 태경연주는 설비 증설을 추진하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에 컨설팅을 요청했다. 전문가를 파견해 2·3차 협력사 생산 혁신을 도와주는 삼성의 ‘산업혁신 컨설팅’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8월 삼성전자에서 20년간 휴대폰 생산관리 전문가로 일한 손상호 전문위원을 파견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직원 32명에 불과한 태경연주로서는 어느 정도 투자를 늘려야 최적의 효율을 낼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생산현장을 살펴본 손 위원은 다른 부문의 증설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생산된 연주봉을 고객사가 요구하는 굵기로 가공하는 절삭 공정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직원들의 생산활동과 휴식 시간, 기계에 걸리는 부담, 설비 및 정비시간을 살펴본 뒤 설비를 늘리지 않고도 생산성을 1.8배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놨다. 태경연주는 이를 바탕으로 연간 영업이익에 맞먹는 15억원을 아낄 수 있었다. 손 위원은 “태경연주 측의 적극적인 개선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컨설팅이 빛을 봤다”며 “지난 4년간 산업혁신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고속성장 시작”

작업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과거 근로자는 연주봉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절삭 작업에 큰 애로를 겪었다. 전기톱을 댈 때마다 튀는 불꽃과 쇳가루도 괴로움을 줬다. 손 위원은 타 컨설턴트들과 해결 방법을 고민해 다른 산업현장에서 비슷한 작업에 이용되는 기계를 태경연주의 여건에 맞게 개조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연주봉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며 쇳가루와 불꽃도 피할 수 있었다. 기계 도입비용 1400만원 중 900만원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지원했다.

또 내년 상반기 마칠 예정인 생산설비 증설(절삭공정 제외)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상생협력펀드가 나선다. 주문량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인 만큼 증설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수년째 100억원 안팎에 머물러 있는 태경연주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18.5%였다.

한혁수 태경연주 경영전략담당 상무는 “가장 절실하던 시점에 삼성 도움을 받아 고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며 “삼성디스플레이의 물대지원 펀드를 통해 납품대금도 현금으로 받게 됐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