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이나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한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의 절반 정도가 신용 회복에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회복 가능성이 낮아져 3년 이상 장기연체자가 신용을 회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채무불이행자는 아니지만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은 적어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취약차주’가 보유한 부채도 4년 반 만에 8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채무불이행의 늪… 3년 이상 연체 땐 '회복 불능'
채무불이행자 절반 신용회복 못해

한국은행은 2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채무불이행자 수는 104만1000명으로 전체 가계차주(1865만6000명)의 5.6%였다. 이들이 보유한 부채는 29조7000억원으로 전체 가계부채(1388조3000억원)의 2.1%였다.

채무불이행자는 신용정보원에 90일 이상 연체(50만원 이상 1건, 50만원 이하 2건) 정보가 등록된 차주를 말한다. 개인워크아웃과 개인회생을 하고 있는 사람도 포함된다.

한은이 2014년 새로 채무불이행자가 된 39만7000만 명을 대상으로 신용 회복 이력을 추적한 결과 올 6월 말 현재 전체의 48.7%인 19만4000명만 신용 회복에 성공했고 나머지 51.3%는 그렇지 못했다. 채무불이행자 중 신용을 회복한 사람의 비율인 ‘신용 회복률’은 채무불이행 발생 후 1년 이내가 29.5%였지만 1~2년은 10.6%, 2~3년은 7.5%, 3년 이상은 1.1%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신용 회복에 성공한 사람을 기준으로 신용 회복을 하는 데 걸린 기간은 1년 이내가 60.5%로 가장 많았고 이어 △1~2년 21.8% △2~3년 15.4% △3년 이상 2.3% 순이었다. 이들의 68.4%인 13만3000명은 스스로 또는 주변 도움 등으로 빚을 갚았고, 3만9000명(20.1%)은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채무조정제도 등을 통해 신용을 찾았다.

금융업권별로는 저축은행(35.6%), 신용카드(36.8%), 대부업(37.9%), 할부·리스(39.8%)보다 은행(43.8%), 상호금융(57.7%) 차주들의 신용 회복률이 높았다. 한은은 “상호금융에서 돈을 빌린 사람 중엔 농·수산업 종사자가 많은데 지역사회 평판에 대한 의식이 강해 채무 상환 의지가 높다”고 해석했다.

직업별로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 고정적인 월 소득이 있는 임금근로자(50.2%)가 자영업자(40.8%)보다 신용 회복률이 높았다. 학생, 주부 등을 포함하는 ‘기타 차주’의 신용 회복률(68.3%)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한은은 “기타 차주의 부채는 주로 소액인 데다 학자금 대출 등에 대한 여러 채무조정제도를 활용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취약차주 빚, 4년 반 만에 80조원

금리 상승 등 대내외 충격에 쉽게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 취약차주의 부채는 올 6월 말 기준 80조4000억원으로 80조원을 넘어섰다. 올 상반기에만 1조9000억원 늘었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면서 저(低)신용(신용 7~10등급)이나 저소득(하위 30%)에 해당하는 차주를 의미한다. 취약차주의 부채가 80조원을 넘은 건 2012년 말(85조원) 이후 4년 반 만이다.

취약차주는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은행 금융회사를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취약차주 대출에서 비은행 비중은 67.3%로 은행(32.7%)의 두 배가 넘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취약차주와 비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높은 비은행 가계대출이 많이 증가했다”며 “앞으로 금리 상승, 부동산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자산건전성이 나빠질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