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에 통상임금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이 사측을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1심)에서 승소해서다. 금융계에선 기아자동차 노조가 지난달 말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한 데 따른 파장이 다른 산업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4일 예보 전·현직 직원 560여 명이 “업무성과급과 자격수당을 통상임금에 반영해서 수당 미지급분을 달라”며 사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직원들이 받는 업무성과급과 자격수당은 통상임금의 요건인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다시 정산했을 때 미지급된 수당 17억3500만원을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직 여부가 고정적이지 않은 별정직원의 성과급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결정에 금융계가 긴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기업은행과 KEB하나은행 역시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들이 소송에 패하면 당장 지급해야 하는 돈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앞으로 부담해야 하는 수당 등 각종 비용은 종전의 두 배를 웃돌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 후 항소를 포기한 곳도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1월 말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한 뒤 항소하지 않고 미지급 수당 260억여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금융계는 향후 통상임금 재판에 기아차 사례가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기아차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지난달 말 1심 선고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게 합당하다고 판결했다. 공교롭게도 예보 통상임금 판결을 내린 곳도 기아차를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였다.

일각에선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법적으로 미흡한 게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통상임금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임금을 말한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시간외수당을 정하는데 월 급여 외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근로자가 받는 시간외수당도 올라간다. 재계 관계자는 “통상임금 기준이 명확하다면 사측과 노조 간 실랑이를 벌일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