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 죽어가는 해양·수산업을 살린 장관으로 꼭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 죽어가는 해양·수산업을 살린 장관으로 꼭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진해운 파산은 글로벌 물류시장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빚어진 참사입니다. 해운업이라는 커다란 국가 기간산업의 구조조정을 금융논리를 앞세운 채권단에 맡겨버렸습니다. 산업정책과 금융이 따로 놀면서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았던 것이죠.”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55)은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진해운 파산과 그 대처 과정에서 정부가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보고서 등의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최대, 세계 7위 원양 컨테이너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지난해 8월30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 후 1년이 지났지만 당시 훼손된 한국의 글로벌 해운 물류망은 아직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다. 한진해운 파산 전 105만TEU(1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달한 국적선사 컨테이너 선복량은 현재 47만TEU로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11.3%에 달하던 미주 노선 점유율은 6% 미만으로 곤두박질쳤다.

김 장관은 “국적선사가 매년 벌어들이는 운임 수입만 10조원가량 줄어들었다”며 “미주와 유럽 노선 등의 평균 운임이 크게 올라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업체 등 화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기에 직면한 것은 해운뿐만이 아니다. 해운과 함께 해양수산부의 양대 축을 이루는 수산업 역시 지난해 어획량이 1973년 이후 44년 만에 100만t 아래로 떨어졌다. 김 장관은 “말 그대로 해양과 수산 양쪽 모두 최악의 상황”이라며 “바다와 관련한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재조해양(再造海洋)’의 각오로 장관직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을 어떻게 봅니까.

“많은 노력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해수부는 해운 구조조정을 주도하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했습니다. 한진해운 문을 닫는 결정을 채권단이 내리는 동안 해수부의 목소리는 거의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뼈저리게 반성할 대목입니다.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조차 글로벌 물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좀 더 큰 틀에서의 경제·산업정책이 작동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만약 당시 정책결정권자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해 민간 주도로 경영하게 하고, 정 안 되면 국유화해 국영기업으로 만들어서라도 선대 규모를 최적화했을 겁니다. 당시 한진과 현대를 합치면 선복량이 100만TEU가 조금 넘었습니다. 일부 비싼 용선은 제외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몇 년 정도만 버티면 업황이 회복돼 충분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해운산업 부흥' 총대 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는 백서 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지난달 해수부 업무보고 중 문재인 대통령께서 ‘한진해운 파산 과정을 평가해보라’고 주문했습니다. ‘한진해운이 문 닫을 때까지 해수부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했는지 냉철히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취지입니다. 미션을 받은 만큼 당시 상황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 등을 펴낼 계획입니다.”

▷얼마 전 해양진흥공사 설립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해양진흥공사는 지난 정부의 해운산업 정책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입니다. 해운업 발전을 위해선 정책과 금융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합니다. 지금은 정책 지원은 해수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금융 지원은 금융위원회가 따로 관장하고 있습니다. 공사는 정책과 금융 지원 수단을 묶어서 하나의 선단으로 움직이도록 할 것입니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공사 설립법이 통과되면 내년 6월쯤 정식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글로벌 대형화 추세에서 현대상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해양진흥공사가 요술방망이처럼 모든 걸 해결하진 못합니다. 한국 해운업이 격해지는 경쟁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지 의구심이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손 털고 나가겠다’고 할 순 없습니다. 많은 반대 속에서도 공사 설립을 결정한 이유는 바로 이런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글로벌 시장에 ‘한국 정부는 절대 해운산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준 것입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현대상선처럼 원양항로를 운항하는 대형 선사가 꼭 필요합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해 수산업계에서도 우려가 많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수산업계에 미치는 충격은 매우 큽니다. 관행적으로 선원들에게 법정 최저임금에서 30%가량을 더 얹어줍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분(16.4%)을 보태면 50% 가까이 인상 요인이 생기는 셈이죠. 게다가 어선은 고정적으로 일하지 않고 탔다가 내리는 인원이 많아서 지원대책을 적용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굉장히 고민이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저임금을 지역별 경제 상황이나 특색을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하도 답답해 직접 자료도 뒤지면서 공부까지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지역마다 최저임금이 다르더군요. 미국은 뉴욕과 워싱턴 등은 시간당 11달러인 반면 조지아주(州)는 5.15달러로 그 절반 수준입니다. 일본은 지난 7월 시간당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 25엔(3.04%) 올렸지만 실제 인상폭은 전국을 A·B·C·D 4개 지역으로 나눠 22~26엔으로 차등화했습니다. 도쿄(958엔)와 규슈 구마모토현(737엔)은 23%가량 차이가 납니다. 지역 공업지대들은 이런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활용해 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지역별로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가 비싼 수도권보다 지방으로 가는 게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내년에 최저임금을 새로 책정할 때는 이런 측면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도 올해 말까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비정규직의 무조건적인 정규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업태와 직무가 뭔지 철저히 분석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만약 전환이 어렵다면 예외를 인정하는 등 합리적 전환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바닷모래 채취로 국토교통부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수산업이 최악의 실적을 낸 데에는 무분별한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와 함께 남획과 중국 어선 불법 조업,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국은 바닷모래 채취 중단을 포함한 장기적인 골재 수급 방안을 국토부와 골재업계가 내놓아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우리처럼 바닷모래 의존도가 높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모래를 수입해 쓰기도 합니다. 만약 국토부와 골재업계가 모래를 수입하겠다고 한다면 부두 확보 등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줄곧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진척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어려운 농어민에게 도움이 되게 예외를 두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하자고 했지만 결코 쉽진 않습니다. 아직 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개정을 추진하는 건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재 해수부와 국민권익위원회는 연말까지 법 시행 관련 영향을 분석하는 용역을 진행 중입니다. 김영란법 시행 후 수산업계도 매출이 20% 정도 줄어 힘든 상황입니다. 정부에서 농어민의 아픔을 이해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내년 설 이전에는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영춘 장관은

대표적 '386 정치인'…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서 당선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을 대표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81학번으로 문재인 정부의 중추인 이른바 ‘86세대’(19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 좌장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학도호국단 폐지를 주도했다.

1987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를 지낼 당시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30대 초반에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별명이 ‘YS(김영삼)의 셋째아들’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 뛰어들며 굴곡진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여당이던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광진갑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2000년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적을 옮겼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18대에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0년 민주당 복당 후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고향인 부산(부산진 갑)에서 출마했으나 3.7%포인트 차로 아쉽게 낙선했다. 2014년에는 부산시장 야권 단일 후보를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게 양보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49.58% 득표율로 3선 고지를 밟았다. 20대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맡아 한진해운 파산 등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 정부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

현 정부에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안희정 충남지사와 특히 인연이 깊다. 1989년 대학 후배인 안 지사를 김덕룡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에게 소개해 정계에 입문시켰다. 김부겸 장관과는 2003년 한나라당 탈당을 주도한 ‘독수리 5형제’ 멤버 관계다.

△1962년 부산 출생 △부산동고,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6대·17대 국회의원(서울 광진 갑·한나라당) △20대 국회의원(부산진 갑, 더불어민주당)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현)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