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순대외채권 사상 최대에 경상수지 5년 넘게 흑자 행진
"북한발 리스크, 과거보다 엄중해"…'지나친 개입 자제·통화스와프 확대' 주문


예상치 못한 북한발(發) 변수가 돌출하며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지표로 봤을 때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양호한 편이지만 최근에 빚어지는 북한 리스크는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면에서 이전보다 엄중하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평가다.

북핵을 둘러싸고 국제 사회가 이견을 조율하지 못하면서 추가 위기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외건전성이 양호한 만큼 외환 당국이 차분하게 대응하되 통화스와프 체결 확대와 같은 안전판 확충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제언한다.

◇ 알뜰살뜰 키운 대외건전성…현재로썬 '양호'

10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평가받는다.

북한 리스크 확대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라도 1990년대말 외환위기 당시와 같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진 않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한은에 따르면 외화 보유액은 8월 말 기준 3천848억4천만 달러로, 4개월 연속으로 사상 최대기록을 갈아치웠다.

외환위기에 시달리던 1997년 말 외환 보유액이 89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43배나 많은 것이다.

7월 말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중국(3조807억 달러), 일본(1조2천600억 달러), 스위스(7천855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4천945억 달러), 대만(4천445억 달러), 러시아(4천184억 달러), 홍콩(4천133억 달러), 인도(3천937억 달러)에 이어 세계 9위 수준이다.

단기적 대외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단기외채 비율(외환 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도 1997년말 286.3%까지 치솟았지만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30.8%까지 떨어졌다.

위기가 고조돼 단기외채를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더라도 현재 정부의 보유외환 수준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현재 단기외채 비율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중간 수준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받을 채권과 갚아야 할 채무의 차이를 나타낸 순대외채권 규모는 2012년 3분기부터 꾸준히 늘어 6월 말 4천231억 달러로 역시 사상 최대를 세웠다.

1997년 말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은 상태로, 순대외채무가 637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 셈이다.

6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도 대외건전성을 튼튼하게 뒷받침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반도체 시장 호조 등 수출 증가에 힘입어 경상수지는 7월 72억6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 과거와 다른 북한 리스크…국제 사회 갈등으로 비화 우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미 북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북한 핵실험 여파는 과거와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 핵실험 이전에도 괌 도발 위협 등으로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14일 이미 70bp(1bp=0.01%포인트)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이는 2016년 2월 25일(71) 이래 최고로 지난 8월 7일 57에서 1주일 만에 13이나 껑충 뛴 것이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지는 것은 해당 국가·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졌음을 뜻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초 북핵 리스크에 따른 영향이 일회성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도 "북핵 충격이 크면 실물경제에 전이될 수 있다"며 재차 우려를 나타냈다.

북한 6차 핵실험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가 초강력 제재를 들고나오면서 갈등이 비화할 조짐을 보이는 점도 위험 요인을 키우고 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등에 추가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4일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해 "북한이 풍계리에 3∼4번 갱도를 준비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핵실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북태평양에 추가로 정상각도의 미사일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긴장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와 맞물리면서 대중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북한 핵실험 직후 사드배치 발사대 4기가 전격 추가 배치되면서 중국의 보복이 한층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 "북한 리스크 오래가면 여파 커져…과도한 조정 개입 주의해야"

전문가들은 북한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외국인 자금 이탈, 원화 가치 하락 등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 리스크가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진행 상황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지금 북한 리스크 관련 상황이 예전보다 더 엄중하기는 하다"라며 "이에 따른 불안감이 오래갈수록 자본 유출, 소비심리 하락 등 여파는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영향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지금까지는 예상보다는 우려가 크지 않은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북핵 등 대외변수가 실질적인 위험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대외건전성 지표가 양호한 만큼 인위적인 개입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성 교수는 "지정학적 위험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는데 원화 가치 유지를 위해 보유 외환을 쓰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인위적인 개입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대외건전성 유지를 위해 통화스와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 보유고를 갑자기 늘릴 수 없으니 통화스와프 체결을 생각할 수 있다"라며 "미국과 상시 통화 스와프를 맺거나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재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연구실장 역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며 "현실적으로 (체결이) 쉽지 않지만 우리 입장에선 무기를 사줬으니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통화스와프 체결 논의 진전을 위한 묘안을 짜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김수현 기자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