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난데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단체급식 과점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업체들은 “자율 경쟁을 통해 형성된 시장 점유율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손보겠다는 것이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공정위도 이 총리 발언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이 총리의 갑작스런 지시

이낙연 "대기업 단체급식 과점 손봐라" 공정위에 지시
이 총리는 5일 국무회의 직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따로 불러 “국내 민간 단체급식 시장에 중소기업 참여가 적고 대기업과 중견기업 비중이 큰 상황에 언론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과점 여부 등 실태를 점검한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총 5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대기업 6개사(삼성웰스토리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한화호텔앤드리조트 CJ프레시웨이)와 중견기업 5개사가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조원을 놓고 4500여 개 중소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부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곧바로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 총리의 발언이 당장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단체급식업체들을 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라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시장 현황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대응 방안 마련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대기업 참여 겨냥

이 총리의 갑작스러운 지시는 2012년 제한됐던 대기업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사업 참여가 올해 1월부터 상주인원 1000명 이상 대형 기관에 한해 허용된 데 따른 중소업체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기업들은 올초부터 구내식당 사업에 대기업을 참여시키고 있고 정부청사도 이달부터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구내식당 입찰에 나섰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달 논평을 통해 “공공기관 구내식당의 대기업 입찰을 제한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같은 달 28일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해 9월 재벌 참여를 허용한 이후 공공기관 구내식당의 대기업 점유율이 더욱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기업 “독과점 아닌데…”

단체급식을 하는 대기업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개입찰 방식으로 10여 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어 독과점 체제라 하기 어렵고, 소비자도 대기업 급식업체를 선호하고 있다”며 “이름 없는 중소기업의 3500원짜리 밥과 대기업의 5000원짜리 밥을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안전성과 품질 등이 보장된 쪽을 고른다”고 말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지적에도 업계는 반박하고 있다. 국내 단체급식은 1990년대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직원 밥이라도 우리가 해 먹이자’는 복리후생 개념으로 시작됐다. 이것이 중소기업과 민간기업으로 점차 확대됐기 때문에 계열사가 많은 회사일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하루 10만 끼 이상을 동시간대에 만들어내야 하는 업종 특성상 대기업의 급식 수준과 단가를 중소기업이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공공기관 구내식당 대기업 참여를 배제한 이후에도 비용 경쟁력에서 열세인 중소업체보다는 외국 회사들이 반사이익을 거뒀다. 이 때문에 “중소 급식업체를 보호한다는 당초 정부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외국 업체의 국내 시장 장악력만 높여준 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임도원/김보라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