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새 정부의 정책 과제 : 소득주도 성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인성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전문위원.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새 정부의 정책 과제 : 소득주도 성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인성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전문위원.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금처럼 자본과잉 상태에선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완화해 수요를 촉진시켜야 한다.”(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분배-지출 고리만 있고 지출-생산, 생산-분배 고리는 외면한 3분의 1쪽짜리 정책이다.”(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정부의 핵심 경제 철학인 소득주도 성장을 두고 경제학계가 격론을 벌였다.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전문가가 주축이 돼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 대강당에서 연 ‘새 정부의 정책 과제’ 토론회에서다.

지난 5월 정부 출범을 전후해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소득주도 성장론을 다룬 세미나가 열린 적은 있지만 보수·중도·진보의 정통 경제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중적인 논쟁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선 “노동자의 몫을 키우는 게 성장에 유리하다”는 주장과 “인위적인 분배 확대는 부작용만 초래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다만 소득주도 성장론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핵심 엔진으로선 부족하고 인적 자본 투자와 구조 개혁,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이뤘다.

“고령화 경제, 노동 친화적 성장 정책 필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은 복지를 통한 재분배와 이를 통한 소득 확충이다. 중하위 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 증가→생산 확대→투자 증가→일자리 확대→소득 증가의 선순환 성장을 이루겠다는 취지다. 최저임금 인상, 건강보험료 보장성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초연금 인상 등 새 정부가 내놓은 정책도 모두 이런 구도를 노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양극화 완화와 성장을 대척관계로 놓은 경우가 많지만 양극화 완화가 효율적 투자와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극화는 가용 소비량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복지 확대가 성장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핵심은 인적 자본 축적을 통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전 교수는 “한국 사회는 저(低)금리, 저투자, 사내 잉여자금 축적 증가로 자본과잉 상태에 직면했다”며 “특히 인구구조 변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노령화 경제에서 자본을 늘리는 건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기적인 수요 자극이 장기적인 성장률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주상영 교수는 “소득 증가를 통해 수요를 촉진하는 정책을 단기 경기 부양책으로만 볼 수는 없다”며 “구조적으로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이 고령화·저성장 국면에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기 성장을 위한 고민 부족”

하지만 상당수 경제학자는 생산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을 높이는 건 재정지출과 분배 확대만을 의미할 뿐 성장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배(임금)를 늘리면 일부 소비재 생산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기업으로선 비용이 증가해 투자를 연기하고 고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생산이 줄고 파이가 작아지면 분배 소득 전체가 줄어 임금 총액도 감소한다는 주장이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론에는 기본적으로 장기 성장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노동소득 분배율을 높이면 기업이 수익성을 키우려고 더 혁신하고 그 결과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이지만 이것이 현실에 들어맞을지 의문”이라며 “증세나 복지를 통해 소득이 높은 사람의 소득을 줄이고 소득이 낮은 사람의 소득을 올리는 정책은 인적 자본의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이인실 교수는 “분배 구조 개선은 재정·통화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하지만 성장을 위한 근본 이슈로 보긴 어렵다”며 “최근 한국의 소비 성향 감소는 분배 구조 때문만이 아니라 노인 가구 증가가 원인이라는 해석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교육·인프라·연구개발(R&D) 투자, 금융 발전, 개방, 제도 등이 복합적으로 성장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인데 소득주도 성장론은 노동 친화적 정책만 강조하고 있다”며 “분배 확대를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론이 임금 격차를 줄여 오히려 당초 핵심 목표인 인적 자본 투자 유인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혁신 성장의 청사진 필요한 시점”

결국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교육·구조 개혁과 혁신 등 소득주도 성장론이 놓치고 있는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진국 함정’을 탈피한 국가들을 보면 모두 총요소생산성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총요소생산성 결정 요인을 명확하게 규정하긴 어렵지만 정책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경쟁력 없는 ‘좀비 기업’을 정리하는 등 시장 원리에 따른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확대나 분배 정책도 특정 일자리를 살리는 게 아니라 시장 원리에 따라 퇴출된 사람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은 “노동 친화적인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단순한 분배 개선보다 인적 자본의 축적과 혁신이 필수”라며 “인적 자본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혁신 성장’의 청사진을 정교하게 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명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