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 - 한·미 FTA 재협상 전략과 대응 방안

미국 정부, 관세 부활시킨다 해도 무역적자 개선 어려운 점 알아
결국 환율문제 거론 가능성 커

미국의 서비스부문 흑자 강조 등 원론적 대처론 설득시킬 수 없어
한국 정부도 보호품목 지정하고 환율은 '다자채널 논의'로 대응을
국내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생산성본부에서 ‘글로벌 통상 질서 변화와 대응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송민정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김동훈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혜정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국내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생산성본부에서 ‘글로벌 통상 질서 변화와 대응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송민정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김동훈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혜정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논의할 첫 실무회의가 22일 서울에서 열리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한국판 플라자합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대미(對美) 무역에서 연간 20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에 ‘원화가치를 절상하라(원·달러 환율을 내리라)’고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미국이 일본과 독일에 통화가치 절상을 압박해 관철한 것 같은 일이 한·미 관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전문가가 주축이 돼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글로벌 통상 질서 변화와 대응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FTA 개정으로 관세를 부활시킨다 해도 무역수지 적자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미국 정부도 잘 알 것”이라며 “결국 환율 문제를 건드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판 플라자합의’ 우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과 과제’란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 측은 한·미 FTA 개정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는 분야 외에 ‘언더 더 테이블(under the table: 비공식적으로)’로 우리 정부에 상당히 어려운 요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미국은 일본과 플라자합의를 했을 때와 똑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플라자합의는 1985년 9월22일 주요 5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장관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맺은 합의를 말한다. 각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서라도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통화가치 상승을 유도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주도했다. 합의 체결 1주일 만에 엔화는 약 8%, 마르크화는 약 7% 평가절상됐다. 이 합의 이후 미국은 불황에서 탈출했지만 일본과 독일은 경기침체를 겪었다.

안 교수는 “미국 정부도 FTA 조항을 아무리 고쳐봤자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며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거론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NAFTA에 환율 조작을 막기 위한 조항을 넣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안 교수는 “미국이 NAFTA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잡기 위해 환율 조항을 넣자는 게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한국 중국 등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토론회에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라제건 동아알루미늄(DAC) 대표는 “기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환율이 주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했다. 라 대표는 “이익이 매출의 10% 정도 나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면 원·달러 환율이 10% 절상됐을 때 이익의 100%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환율에 비하면 관세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라고 우려했다.

다만 미국이 환율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는 것은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미국이 설정한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 문제를 미리 걱정하는 건 우리 스스로 협상력을 깎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보호 품목 지정해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대응해 한국 정부도 보호 품목을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정부가 ‘미국이 서비스 부문에서는 이익을 많이 봤지 않나’라고 해봤자 러스트 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 사람들의 박탈감을 해소하진 못한다”며 “미국이 제조업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FTA 개정을 요구한다면 우리도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분야의 관세를 FTA 협상 이전으로 되돌린다면 해당 산업의 고용 감소 효과 등을 계산해서 다른 부문에서 균형을 맞춰달라고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우리도 보호산업을 획정하고 협상에 대비해야 한다”며 “환율의 경우 동료 그룹을 만들어 미국에 ‘다자 채널 내에서 논의하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혜정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는 “자동차 부문은 미국산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기 때문에 저탄소차 구매 시 보조금을 주거나 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에 부담금을 매기는 제도를 미국이 문제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의약품에선 현 정부가 의료비를 전면 급여화하면 약품 가격 인하 정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이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무역은 제조업 주도와 특정 품목에 치중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지역적으로도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기회에 수출 품목 및 시장 다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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