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울산시 울주군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 압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17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울산시 울주군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 압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15일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자마자 전격적으로 전수조사 방침을 꺼내들었다. 1200개가 넘는 전국 모든 농장마다 일일이 살충제 사용 여부를 확인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국민은 정부의 전수조사를 통해 살충제를 쓴 농장이 명백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축산당국의 전수조사는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농장주 사이에선 정부의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증언이 계속 나왔다. 소비자들은 ‘짜고 치기 조사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리 준비한 달걀 내줬다”

농장주가 건넨 계란으로 "검사 끝"…불안감 더 키운 '날림 전수조사'
전수조사는 농림축산식품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고시한 ‘친환경농축산물 및 유기식품 등의 인증에 관한 세부실시 요령’에 따라 이뤄진다. 요령에 따르면 시료 채취는 모집단의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작물 재배지 형태나 적재상태, 진열상태 등을 고려해 ‘Z’자형 또는 ‘W’자형으로 최소한 6개소 이상의 수거 지점을 선정해 진행돼야 한다. 모집단의 일부분에서만 샘플이 채취되는 것을 막아 최대한 무작위 추출과 비슷한 정도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축사 여러 군데에서 무작위로 시료를 확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수조사에서 이런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 지침과 달리 일부 농장에서 검사 요원이 방문을 사전 통보하고, 무작위 샘플이 아니라 농장주가 준비한 조사용 계란을 수거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경기 양주의 한 농장주는 “달걀을 수거할 테니 알 한 판을 준비해 놓으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검사받을 달걀을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하면 누가 살충제를 뿌린 닭이 낳은 달걀을 내놓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살충제 검출이 운에 달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방문조사를 알리는 전화를 미리 하고 수거가 이뤄지다 보니 살충제를 사용했더라도 이전에 생산한 달걀을 내놓으면 샘플조사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조사 담당 직원이 전날 미리 전화를 걸어와 “마을 대표가 계란 한 판씩 들고 마을회관으로 나오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런 일이 이어지면서 농장주 사이에서는 정부의 결과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강원 철원 지역 농장주는 “다른 곳에서도 다들 살충제를 썼을 텐데 정직하게 내놓은 사람만 적발된 것 같다”며 억울해했다. 박용호 서울대 교수는 지난 4월 한국소비자연맹이 주최한 ‘유통달걀 농약관리 방안 토론회’에서 “지난해 산란계 사육농가 탐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인 50.8%가 닭진드기 감염과 관련해 농약을 쓴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일정 맞추느라 ‘졸속 조사’

전수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데에는 정부의 조급증이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에 맞춰 서둘러 조사하다 보니 부실 조사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전수조사는 국민이 계란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끔 하는 유일한 절차였다는 점에서 정부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농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책임지라고 엄포를 놓으며 양계장 출입을 막는 사례가 있었다”며 “이런 경우 정상적인 시료 채취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파문이 커지자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17일 국회 현안보고에서 “정부의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된 121개 농장에 대한 재검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재검사를 거치면 기존에 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에서도 추가로 살충제 성분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