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법인소득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는 것을 놓고 해당 기업의 주주, 근로자,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초대기업에 ‘표적 증세’를 하기 위해 과세 구간을 신설하고 누진세를 강화하는 곳도 한국밖에 없다는 점에서 ‘갈라파고스 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누진적 법인세, 주주·근로자에 피해 갈 수도"
미국도 사실상 단일세율

한국의 법인세 과세 구간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20%), 200억원 초과(22%)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 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2017년 세법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되고 여기엔 기존 22%보다 3%포인트 높은 25%의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6일 한국경제신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의 법인세 과세 구간을 분석한 결과 25개국이 조세 형평성을 이유로 법인세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과 헝가리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각각 25%, 9%로 낮추면서 과세 구간을 하나로 통합했다. 특히 헝가리는 최고세율 19%, 중소기업에는 10%를 적용했으나 올해부터 아일랜드(12.5%)보다 낮은 9%의 단일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단일세율을 적용하지 않는 나머지 10개국도 대기업 증세 등을 통한 세수 확보보다 영세 소기업에 경감세율을 적용해주려는 목적으로 과세 구간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에서 최고세율 과세 기준은 평균 96억원이었다. 과세 구간이 주로 중소기업의 소득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한국처럼 4개 이상의 복잡한 과세 구간을 설정한 국가는 미국 벨기에 포르투갈 등 세 곳밖에 없다. 미국 법인세율은 8단계로 OECD 국가 중 가장 복잡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상 단일세율에 가까운 구조다. 최고세율 적용 구간인 8단계는 소득 205억원(약 1833만달러) 이상 기업이 대상이다. 90%가 넘는 기업이 이 구간에 들어가 있다. 4~8단계의 세율도 34~35%로 거의 차이가 없다. 미국은 1~3단계의 소득 1억1000만원(약 10만달러) 이하 기업에만 15~25%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세 부담 공평하지 않다”

세계적인 추세가 법인세 단일 과세인 이유는 누진 과세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때문이다. 법인세가 늘어나면 종업원 임금이나 주주에게 가는 배당이 줄고, 법인이 제품 또는 서비스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미국 어번-브루킹스 조세정책센터는 “법인세 변동에 따른 영향은 주주가 60%, 근로자가 20%, 자본가가 20%를 받는다”고 발표했다.

기업소득의 누진 과세로 인한 조세 형평성 문제는 주로 주주, 근로자, 소비자의 소득이 기업 소득과 비례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기업 소득이 2100억원인 대형 유통기업 A사의 지분은 다수의 소액주주와 국민연금, 일부 대주주가 소유하고 있다. 근로자 평균 연봉은 약 5000만원, 소비자는 대다수 일반인이다. 소득이 180억원인 중형 법무법인 B사는 일부 대주주가 모든 지분을 소유한다. 평균 연봉은 약 1억원, 소비자는 일부 고소득자 또는 기업이다.

현재 논의되는 법인세율을 적용했을 때 A사는 25%, B사는 20%를 부담한다. A사의 소액주주, 근로자, 소비자 소득이 B사보다 현저히 낮음에도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과세 구간을 신설하는 것보다는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 기업의 절반가량은 법인세를 내지 않고, 상위 1%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76%를 부담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