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2015년 3월 스티브 이스터브룩이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직후 자신을 소개하는 23분짜리 동영상을 투자자들에게 공개했다. 일정한 톤에 눈도 거의 깜박이지 않은 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신속한 의사결정, 성장의 열쇠, 가치 제안’이라는 진부한 경영목표를 읊었다. 이날 맥도날드 주가는 1%가량 떨어졌다.

그의 데뷔 무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주주들은 그가 건강식으로 소비자 취향이 옮겨가면서 매출 타격을 입은 미국의 전통 햄버거 회사를 소생시킬 적임자인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취임 2년 만에 이스터브룩 CEO는 투자자들에게 시원한 한방을 날렸다. 그가 취임한 뒤 맥도날드 주가는 약 98달러에서 154달러로 치솟으며 60% 상승했고, 판매 실적은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준비된 쿼터백”

[Global CEO & Issue focus]  스티브 이스터브룩 맥도날드 CEO
이스터브룩 CEO는 1967년 영국 잉글랜드 런던의 북서부 왓퍼드에서 태어났다. 왓퍼드그래머스쿨을 나와 더럼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으며 크리켓 선수로 활약했다. 대학 졸업 후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회계사로 근무한 뒤 1993년 런던의 맥도날드 재무팀에 입사했다.

그는 2006년 영국 맥도날드 대표를 맡아 실적 반등을 이끌면서 주목받았다. 이듬해엔 북유럽 대표를 맡았다. 크리켓 경기에서 배운 경영전략은 맥도날드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2006년 맥도날드가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맥잡(McJobs)’이라는 오명을 얻자 그는 정면 승부 전략을 펼쳤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을 찾아가 ‘자극적인 음식, 저임금 일자리’로 설명된 맥잡의 정의를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영국에서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주범으로 몰리자 “맥도날드는 비만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할 테니 정부와 개인도 노력하자”며 전면에 나섰다. 메뉴에 들어가는 소금 지방 설탕 함유량을 줄였다. 조미료를 덜 쓰면서 맛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패스트푸드 경영진으로서는 처음으로 생방송 BBC뉴스나이트에 출연해 《패스트푸드 네이션》의 저자 에릭 쉴로서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맥도날드에서 명성을 쌓은 그는 2011년 영국 캐주얼식당 체인인 피자익스프레스와 일본 음식점체인 와가마마의 CEO로 영입됐다가 2013년 맥도날드 최고브랜드책임자로 다시 돌아왔다. 맥도날드 이사회는 2년 만에 그를 CEO에 앉히며 회사의 명성을 되살리는 임무를 맡겼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맥도날드의 올해 2분기 순이익은 14억달러(약 1조5736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억9000만달러에 비해 28% 급증했다. 글로벌 고객 수는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프리미엄 신제품 시그니처버거의 인기와 음료 프로모션 행사에 힘입은 결과다.

주요 국가에서 이용 고객이 모두 늘어난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영국 맥도날드는 지난 4월 43년 만에 월간 최고 판매실적을 올렸다. 독일에서도 10년 만에 분기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캐나다에서도 5년 만에 최고 판매 실적을 올렸다.

13년 동안 맥도날드에 투자해온 걸랜캐피털파트너스의 트립 밀러 파트너는 “그는 슈퍼볼에서 뛸 준비가 된 백업 쿼터백(미식축구의 공격팀 리더)”이라고 말했다.

건강식 이미지를 입혀라

2015년 이스터브룩 CEO가 영입됐을 당시 맥도날드는 정체성 위기에 직면했다. 소비자들은 빅맥과 감자튀김 대신 건강한 대안을 선택했다. 경쟁 업체인 치폴레멕시칸그릴 매장에서 식품 관련 질병이 발생하면서 패스트푸드에 대한 인식은 더 악화됐다. 맥도날드 매장의 판매실적은 12년 만에 하락으로 돌아섰다.

그는 빅맥의 전통 이미지를 고수하려던 이전 경영진과 달랐다. 아이 셋을 둔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는 기름진 음식으로 유명한 회사를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햄버거 회사’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맥도날드 이미지를 고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건강식을 찾는 밀레니엄세대를 겨냥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매장에 케일을 넣은 아침 메뉴를 도입했다. 냉동 패티 대신 신선한 닭고기를 넣은 쿼터파운드치즈버거를 선보였다. 치킨너겟에서 인공보존제를 뺐으며 샌드위치빵에 고과당 옥수수시럽 사용을 중단했다. 2025년까지 닭장에서 키우지 않은 닭이 낳은 달걀을 전면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엔 냉동 패티 대신 신선육을 사용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발표했다. 신선육 패티로 전환 시 식품 안전성 문제가 불거질 위험은 커지지만 맥도날드의 평판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다. 주요 도시 매장에서 쿼터파운드버거에 신선 소고기 패티가 사용될 예정이다. 웬디스버거가 신선육 패티를 사용한 적은 있지만 맥도날드처럼 1만4000개 매장에서 대규모로 신선육 패티로 전환하는 사례는 없었다.

이스터브룩 CEO는 “맥도날드는 농업 관행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하게 소고기를 사용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며 향후 유기농 소고기나 초원에서 키운 소고기 메뉴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기술 발달에 붕괴되느냐, 스스로 붕괴하느냐

이스터브룩 CEO가 최근 고심하고 있는 것은 날로 발전하는 기술 문제다. 그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통산업은 붕괴할 것”이라며 “붕괴되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를 붕괴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적극적인 기술 도입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맥도날드는 ‘미래의 경험’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주문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맥도날드는 올해 말까지 미국 2500개 매장에 키오스크(무인결제시스템)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주문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무인 주문결제단말기다. 블루투스를 이용해 테이블에서도 모바일 주문이 가능해진다. 증권가는 맥도날드의 디지털 주문 플랫폼이 이익과 매출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맥도날드는 전체 매장의 40%에서 주문배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배달업체 우버이츠(UberEats)와 손잡고 주문배달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매출은 급증했다. 3500개 이상 매장에 디지털 주문 방식을 도입해 배달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올해 말까지 세계 100개국 3만6900개 매장 가운데 2만 곳에 모바일 주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