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인기만 믿고 밀어붙이는 증세
청와대와 여당이 주도하는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우선 갑작스런 말 뒤집기다. 당초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올해는 증세하지 않는다. 고소득자 증세도 없다”(김진표 전 위원장)고 밝혔다. 법인세율 인상 등 사회적 논란이 큰 세금은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거쳐 내년 이후 증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올해는 소득세와 법인세율 인상은 없다”고 했다.

지난 19일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세율 인상 같은 적극적인 증세는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재원 조달 계획이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자 하루 만에 말이 달라졌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아예 구체적인 증세안을 꺼냈다. 과세표준 5억원 초과 소득자의 세율을 40%에서 42%로 올리고, 과표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25%의 최고세율을 신설(종전 22%)하는 내용이었다. 다음날인 2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 대표의 말을 받아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를 공식화해버렸다.

청와대와 여당이 갑작스럽게 증세로 선회한 건 ‘지지율이 높은 지금이 증세 문제를 치고 나갈 적기’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24일 라디오에 나와 “당내에서 ‘집권 초기 국민적인 지지 기반이 높을 때 세금을 올리는 게 낫지, 내년에 가서 이 지지 기반이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빨리하자’는 의견이 다수가 되니까 저도 거기에 동의했다”고 했다.

국정기획위가 당·정·청과 두 달간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예 “(임기 5년 내내)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 증세는 없다”며 “증세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으로 한정하겠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이 과정에서 국정기획위가 말한 ‘국민적 합의’는 생략됐다.

그나마 세수 효과도 의문이다. 추 대표의 제안대로 세금을 올리면 더 걷히는 세금은 연간 3조8000억원, 5년간 19조원으로 추산된다. 공약이행 재원(178조원)의 10% 남짓이다. 증세 대상도 5억원 초과 소득자는 경제활동인구(2800만 명)의 0.14%(4만 명)에 불과하고 2000억원 초과 대기업은 법인세 신고기업의 0.02%(116개 사)에 그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복지 확대와 공무원 확충에 따른 비용은 이번 정부뿐 아니라 다음 정부에도 계속 부담이 될 수 있다. 그걸 뒷받침하려면 안정적인 세수 확충이 필수적이다.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만으로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