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평가점수를 조작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11일 발표되자 면세점 업계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2015년 11월 선정 때 점수가 과소평가돼 탈락했다가 이듬해 재선정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관광객들이 쇼핑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관세청이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평가점수를 조작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11일 발표되자 면세점 업계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2015년 11월 선정 때 점수가 과소평가돼 탈락했다가 이듬해 재선정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관광객들이 쇼핑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15년 한화와 두산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될 때부터 업계에서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면세점 운영 노하우도, 면세점을 운영해야 할 특별한 명분도 없었기 때문이다. 2년 정도가 지나 의혹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악재에 악재가 겹쳤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매출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감사 결과가 면세점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면세점 독과점 논란 있었다”

면세점 업계 '패닉'…"사드 적자도 버거운데 비리의 온상 내몰리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한 각 면세점의 반응은 엇갈렸다.

특혜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한화갤러리아와 두산은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공고를 기준으로 관세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며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기 때문에 공식적 답변은 하지 않았다. 다만 관세청이 평가점수를 허위로 작성해 롯데가 떨어지고, 대신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대목은 부인했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롯데가 국내 면세점 시장을 오랜 기간 독과점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1, 2차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피해자’라는 것이 입증된 롯데는 “오해를 해소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롯데 관계자는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롯데가 온갖 특혜를 본 것처럼 오해를 받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밝혀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차 사업자 선정과정은 여전히 롯데의 부담이다. 감사원이 “관광수요를 과도하게 부풀려 면세점 사업자를 4개나 선정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작년 3월 신동빈 롯데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 이후 롯데 월드타워점이 특허를 재취득했기 때문이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 독대 이전에 정부가 면세점 추가 선정을 결정했으므로 시점상 특혜를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신 회장은 면세점 사업권 획득을 위해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독과점·영업시간 규제 가능성

이번 감사 결과로 면세점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산과 한화는 특혜를 받았다는 게 밝혀져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불법으로 취득한 특허에 대해서는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언제 접을지 모르는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적되는 적자도 두산과 한화의 골칫거리다. 특혜로 받은 면세점이지만 두산과 한화의 분기 적자는 수백억원에 이르고 있다. 흑자로 전환하는 것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다른 면세점들도 반사이익은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감사 결과로 면세산업 전체에 대한 불신이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불신에 편승해 정부가 면세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감사원의 칼날을 피한 롯데와 신라도 안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독과점 규제가 거론되는 방안 중 하나다. 독과점과 관련해선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50% 이상, 또는 3개 이하 사업자 점유율이 75% 이상이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보고 특허 심사 때 감점을 준다. 시장점유율 약 50%인 롯데와 30% 수준인 신라가 주된 타깃이다. 이 규제가 시행되면 롯데와 신라는 신규 면세점 특허뿐 아니라 재심사 때도 불이익을 받는다.

◆“구조적 문제가 더 커”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이는 것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세점 특허 심사 과정은 대부분 비공개가 원칙이다. 누가 심사를 하는지, 어느 회사가 어느 항목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도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허권을 쥔 관세청이 점수를 조작해도 기업들은 알 수 없다. 정부가 허가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따내야 하는 구조 탓에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