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프론티어] '젊어진' 유유제약…개량신약·빅데이터 마케팅으로 '날갯짓'
유유제약은 1941년 설립된 중견 제약사다. 하지만 76년의 전통을 지닌 기업 같지 않다. 영업사원도 평소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금요일이면 직원들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한다. 보수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제약업계 특유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제약업계에선 “유유제약이 달라졌다, 젊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유로운 근무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오너 3세인 유원상 부사장(43)이 있다.

틈새 전략으로 턴어라운드

[K바이오 프론티어] '젊어진' 유유제약…개량신약·빅데이터 마케팅으로 '날갯짓'
유유제약은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의 동생인 고(故) 유특한 회장이 설립했다. 창업 초기 완제 의약품과 의약품 원료를 수입하던 유유제약은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종합비타민 ‘비타엠’을 생산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1955년 결핵치료제 ‘유스파짓’, 1965년 국내 최초 연질캡슐 종합영양제 ‘비나폴로’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제약 명가로 발돋움했다. 국산신약 10호이자 복합신약 1호인 골다공증 치료제 ‘맥스마빌’, 복합신약 2호인 뇌졸중 치료제 ‘유크리드’ 등을 개발했다.

[K바이오 프론티어] '젊어진' 유유제약…개량신약·빅데이터 마케팅으로 '날갯짓'
유유제약은 10년 전 큰 위기를 겪었다. 매출의 40%를 넘는 주력 제품이던 뇌 및 말초순환 개선제 ‘타나민’이 치매를 제외하고는 이명 어지럼증 등의 치료에 보험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다. 연간 300억원을 웃돌던 타나민 매출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이 여파로 2007년 738억원이던 매출이 2008년 450억원으로 급감했다.

유유제약은 틈새시장을 겨냥한 복제약(제네릭)과 개량신약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재도약에 나섰다. 천식 및 호흡기 감염 치료제 ‘움카민’과 맥스마빌, 유크리드 등으로 주력 제품군을 늘렸다. 비타민C ‘유판씨’, 멍 치료제 ‘베노플러스겔’, 비강세정제 ‘피지오머’ 등 일반의약품도 스테디셀러로 키워냈다. 유유제약은 지난해 715억원의 매출로 10년 만에 매출 700억원대를 회복했다. 유 부사장은 “신제품과 기존 인기 제품의 라인업을 더욱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성장 속도를 높여갈 계획”이라고 했다.
유원상 유유제약 부사장(왼쪽 두 번째)이 서울 약수동 사무소에서 직원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유 부사장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수시로 갖는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유원상 유유제약 부사장(왼쪽 두 번째)이 서울 약수동 사무소에서 직원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유 부사장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수시로 갖는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오너 3세의 참신한 경영 실험

유승필 회장의 장남인 유 부사장은 2009년 유유제약에 합류했다. 부친에게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회사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놨다. 매주 금요일을 캐주얼데이로 바꾼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유 부사장은 의사결정 속도를 중시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회의를 소집해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예전 직장에서 제 의견을 들어주는 상사가 무척 고마웠고 일하는 데도 큰 힘이 됐던 경험이 있다”며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경영에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유 부사장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미국 트리니티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에 취업했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가만히 앉아 회계장부만 들여다보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사람들과 몸으로 부딪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컬럼비아대 MBA(경영학석사)를 마치고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에 영업사원으로 취업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탈리아인 등이 운영하는 병원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나름의 영업 노하우를 터득했다. 그는 “병원 문을 열고 닫는 것을 거들며 맨땅에 헤딩하듯 거래처를 뚫었다”며 “당시 경험이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젊은 경영자답게 소통도 중시한다. 직원과 수시로 회식 자리를 마련해 다양한 의견을 경청한다. 소주 반병이던 주량이 세 병으로 늘었을 정도다. 직원 채용 면접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입사지원자에게 꼭 묻는 말이 있다고 했다. “왜 유유제약에 입사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평소 유유제약에 어떤 관심을 가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업계 최초 ‘빅데이터 마케팅’

유 부사장은 새로운 시도에 관심이 많다. 국내 제약사로는 처음으로 빅데이터 기법을 마케팅에 접목했다. 5년 전 어린이용 진통소염제로 판매하던 베노플러스겔을 20, 30대 여성을 겨냥한 ‘멍 치료제’로 질환군과 고객층 타깃을 바꾼 게 대표적이다. 당시 젊은 여성 사이에서 ‘성형수술 후 생긴 멍을 없애는 데 베노플러스겔이 좋더라’는 사용 후기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고 있었다.

유유제약은 곧바로 시장조사에 착수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지만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는 데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고민을 해결해준 곳은 빅데이터 전문업체 다음소프트였다. SNS 댓글 등에 나오는 키워드를 분석해보니 베노플러스겔이 ‘멍과 어린이’보다는 ‘멍과 여자’와 상관관계가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형, 지방흡입, 붓기, 멍 등의 키워드와 밀접하다는 것도 알아냈다. 유 부사장은 “타깃 고객층을 어린이에서 여성으로 바꾸는 등 마케팅 전략을 완전히 수정했다”며 “멍을 빼는 데 계란이나 소고기만을 떠올리던 소비자에게 베노플러스겔이 새로운 대안으로 인식되면서 주춤하던 매출이 다시 늘어났다”고 했다.
유유제약 임직원이 지난달 17일 서울 난지캠핑장에서 건강한 여름나기 캠페인을 열고 캠핑장 주변을 청소했다. 유유제약  제공
유유제약 임직원이 지난달 17일 서울 난지캠핑장에서 건강한 여름나기 캠페인을 열고 캠핑장 주변을 청소했다. 유유제약 제공
신약 개발에도 속도

유유제약은 지난달 수원 광교에 중앙연구소를 열었다. 서울사무소와 경기바이오센터 등에 분산돼 있던 연구설비와 인력을 한데 모았다. 제제연구팀, 신약연구팀, 연구기획팀 등 20여 명의 연구인력이 신약과 개량신약 등을 개발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전임상센터장 출신인 백태곤 전무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백 소장은 유 부사장 못지않게 아이디어가 많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다. 유 부사장은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과도 손을 잡았다. 서울아산병원 신약개발융합 바이오이미징센터가 개발한 바이오이미징 기술을 신약 개발에 활용하기로 했다. 바이오이미징은 생체 세포나 분자 수준에서 나타나는 생화학적 변화를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영상을 통해 단일 개체의 변화를 시간대별로 확인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해외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지난해 수출이 10억원에 그쳤을 정도로 아직은 미미하다. 유유제약은 최근 빠르게 커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틈새시장을 잘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학생 선호 넘버원 기업 되겠다”

[K바이오 프론티어] '젊어진' 유유제약…개량신약·빅데이터 마케팅으로 '날갯짓'
유유제약 비전은 ‘대학생이 졸업 후 입사하고 싶은 넘버원 기업을 만들자’다. 남들처럼 실적이나 성장 목표를 내세우지 않는다. 유 부사장은 “인재가 많아지면 회사는 자연히 성장하기 마련”이라며 “매출 1000억원을 언제 달성하겠다는 성과주의 목표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찾는 일터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직원 복리후생에 신경을 많이 쓴다. 지난해에는 핵심인재 스톡그랜트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우수 직원에게 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제도다. 직원에게 업무 동기와 애사심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매달 사내제안을 받아 포상도 한다. 직원이 추천한 사람을 채용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갓 입사한 사원의 조직 적응을 돕고 직원 화합 등을 위해 멘토링 제도도 펼치고 있다. 임직원이나 배우자의 직계존속 두 명에 한해 골밀도 검진비를 전액 지원해준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