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2011년 칩 버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리바이스트라우스 이사회로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아이콘인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 말이다.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와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의류업계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갬블(P&G)에서만 30년 가까이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일했다. 폴저스(커피) 지프(땅콩버터) 스위퍼(세제) 질레트(면도기) 등 P&G의 대표 브랜드가 그의 손을 거쳤다. P&G 임원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여기저기에서 CEO 자리 제안이 들어왔지만 그의 구미를 당긴 곳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리바이스는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사랑받은 브랜드라는 점에서 달랐다. 특히 이제 막 침체기에 들어선 회사에 ‘구원투수’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실적 반등과 브랜드 가치 모두 잡아

브룩 실즈부터 제니퍼 애니스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까지 1990년대를 풍미한 스타들에게 데님은 빠질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었다. 리바이스의 매출도 1996년 역대 최고치인 71억달러(약 8조1800억원)를 찍었다. 하지만 실적은 5년 만에 30억달러가 증발하며 가파르게 꺾였다. 이후 10년간 매출은 40억달러(약 4조6000억원) 언저리를 맴돌며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브랜드가 누렸던 영광도 서서히 빛이 바랬다.

버그 CEO에게 주어진 최우선 임무도 실적 회복이었다. 그는 2013년 혁신연구실 ‘유레카’를 만들고 혁신적인 제품군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뒀다.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 럭비팀의 홈경기장을 ‘리바이스 스타디움’이란 이름으로 사용하는 데 2억2000만달러(약 2530억원)를 지불했다. 20년간 사용료로, 시즌당 1100만달러를 내는 셈이다. 미국 경기장의 시즌당 이름 사용료로는 시티필드(2000만달러) 메트라이프스타디움(1600만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금액으로 꼽힌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리바이스 스타디움은 브랜드의 부활을 상징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버그 CEO가 합류한 이후 리바이스는 4년 연속 매출과 이익이 늘어났다. 회사채 신용등급은 투자등급 5단계 밑에서 한 단계 밑으로 바짝 올라왔다. 배당도 증가했다.

신축성 입힌 청바지로 돌파구 마련

실적 반등의 비밀은 역발상이었다. 2000년대 들어 평상복 시장의 주도권은 청바지에서 스타킹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와 운동복 같은 ‘에슬레저’ 패션으로 옮겨갔다. 신축성 강하고 부드러운 합성섬유인 라이크라 덕분이었다. 순면 100%의 단단함과 뻣뻣함을 생명으로 여기는 청바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이에 버그 CEO는 신축성과 부드러움을 가미한 청바지를 출시하며 정면 승부를 펼쳤다. 리바이스는 2014년 운동복 스타일의 남성 의류를 선보였으며 이듬해 여성 청바지 라인도 전부 다시 출시했다. 지난해엔 150년 전통의 일자 501 청바지에도 신축성을 가미한 신제품을 내놨다. 버그 CEO가 공들여 만든 혁신연구소 유레카가 정말 “유레카(알아냈어!)”를 외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4.5%)과 2015년(-3.4%) 마이너스 성장했던 청바지 판매시장은 지난해 1.7%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올해는 2.2% 성장세가 예상된다.

빈티지 청바지의 인기가 돌아온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레깅스 스타일의 인기가 점차 사그라지면서 투박하게 일자로 쭉 떨어지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의 유행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프랑스 패션브랜드 베트멍(Vetement)이 2014년 가을 패션쇼에서 빈티지 청바지를 재해석한 스타일을 선보인 것이 신호탄이 됐다. 무심하게 잘라낸 청바지와 청재킷이 패션 애호가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100만원이 훌쩍 넘는 청바지를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됐다. 신축성 없는 뻣뻣한 청바지의 인기도 돌아왔다. 리바이스는 지난 4월 베트멍과 협업으로 엉덩이 부분에 지퍼가 달린 청바지를 출시하며 데님패션의 복귀를 확인시켰다.

강하고 솔직한 리더

버그 CEO의 성공 뒤엔 고통도 따랐다. 11명의 임원 중 10명이 교체됐으며 150개국 매니저 및 부회장의 60% 이상이 3년을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이는 ‘모든 문제는 사람이다’라고 믿는 그의 경영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모든 문제는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회사 내에서 발전시켜온 리더십이 좌우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나이키스토어에서 영입된 캐리 애스크 글로벌 소매 담당 회장은 “버그 CEO의 리더십을 보고 리바이스를 선택했다”며 “그가 대단한 성공스토리를 만들어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강한 리더’의 전형으로 꼽힌다. 1957년 미국 뉴욕주 브롱스빌에서 태어나 미국 라파예트대를 졸업하고 4년간 미국 육군에서 대위로 복무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오랜 기간 암 투병을 했다. 그는 운동을 삶의 돌파구로 삼았으며 그러는 동안 팀워크 능력과 최선을 다해 경쟁에서 이기려는 근성을 기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도 리더십이다. 그다음으로 보는 것은 성공이나 성취의 경험이 있는가다. 마지막으로 실패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본다.

최근 버그 CEO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정보기술(IT) 업체에 인재를 뺏기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그는 혁신을 지속하는 경영 방침으로 직원들에게 신뢰를 얻으려 노력한다. 또 매달 타운홀 방식의 회의를 열어 직원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그는 “내가 모든 문제의 정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나는 사람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팀워크를 장려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