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한 면세점  >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급감하면서 시내 면세점 방문객 수도 크게 줄었다. 3일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의 화장품 매장들이 한산한 모습이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한산한 면세점 >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급감하면서 시내 면세점 방문객 수도 크게 줄었다. 3일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의 화장품 매장들이 한산한 모습이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화갤러리아의 자회사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015년 7월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주식’이었다. 시내 면세점 사업에 도전한 영향이었다. 그해 6월 말 5만원 안팎이던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주가는 보름 만에 4배로 뛴 20만원을 웃돌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면세점 사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그랬다. 2013년 6조8330억원이던 국내 면세점 매출이 2015년엔 9조원을 돌파하며 이 전망은 맞는 듯했다. 2년이 지난 현재 이 회사 주가는 3만4200원(3일 종가 기준)이다.

거품은 터졌고 투자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결국 제주공항 면세점 면허를 반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미운 오리 새끼’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백화점·신세계 강남점 문 열기도 전에…면세점 구조조정 '한파'
◆아우성 면세점업계

거품이 터진 직접적 이유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다. 지난 3월 중국 정부는 한국 단체관광 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2월 8억8253만달러였던 국내 면세점의 외국인 매출은 3월 6억6494만달러, 4월 5억9015만달러로 뚝뚝 떨어졌다. 면세점 매출은 예년 수준 대비 30% 안팎 감소했다.

면세점 숫자가 크게 늘어난 반면 중국인 매출이 급감한 영향이다. 높은 임대료를 지급하는 공항면세점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공항면세점들은 공항공사에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인 비중이 약 80%에 이르는 한화갤러리아 제주공항 면세점은 사드 사태 직후 임대료 조정 신청을 했다. 연 250억원 정액인 임대료를 매출과 연동한 정률제로 바꿔달라고 했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세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협상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한화갤러리아는 제주공항 면세점을 다음달 말까지만 운영하기로 했다.

면세점들은 3월 말 한국면세점협회를 통해 임대료 한시 감면 건의서를 인천공항공사에 제출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5년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 때 임대료와 항공사 착륙료를 면제해줬다는 게 근거였다. 하지만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인천공항 2터미널 면세점은 한 자리가 6차례나 유찰되기도 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 강남면세점 등 오는 12월 개장 예정인 신규 면세점들도 개장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1995년 악몽의 재연

업계에서는 1995년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해 국내 면세점 29개 가운데 10개가 한꺼번에 문을 닫는 일이 벌어졌다. 1986년 정부는 면세점 특허를 많이 내줬다. 서류만 제대로 갖추면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10개가 채 안 되던 면세점은 순식간에 34개로 늘었다. 주요 면세점 손님은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되자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줄기 시작했다. 결국 1990년 한 해에만 10개가 문을 닫았다. 1999년 20개까지 면세점 수가 줄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면세점이 대박을 낼 것이란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작년 12조2700억원에 달했다. 중국인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면세점 상품을 구입한 영향이었다.

면세점 몸값은 크게 올랐다. 인천공항에 입점한 면세점들은 연 수천억원의 임대료를 써내면서까지 면세점 입찰에 뛰어들었다.

롯데·신라·신세계 등 대기업 계열 3개사가 지난해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로 지급한 돈만 8000억원에 육박했다. 시내면세점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면세점 특허를 받아내기 위해 유통망이 없는 기업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면세점 수는 2011년 32곳에서 지난해 50곳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사드로 인해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며 면허 반납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