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규제 탓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숨통이 트여야 기업들이 투자를 고민할 텐데 새 정부에선 왜 규제개혁 얘기가 안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한 대기업 회장이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그는 “국회에서 무차별적으로 규제 법안이 쏟아지는데 기업들이 옴짝달싹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한국경제신문이 20대 국회 개원 이후 1년간(2016년 5월30일~2017년 5월31일) 발의된 7149건의 의원·정부 발의 법안을 분석한 결과 기업 관련 법안 수는 812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간 규제강화 법안만 549개…"발목 잡힌 기업, 투자는 언감생심"
이 가운데 68%인 549개가 새로 나온 규제거나 기존 규제를 더 세게 죄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 법안인 것으로 분석됐다. 263개(32%)만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법안이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19대 국회 때와 비교해 기업 규제 법안 수가 30~4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20대 국회가 쏟아낸 규제 법안 중 △상법 개정안 △물류시설법 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소비자집단소송법안 △법인세법 개정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을 대표적 규제 강화 법안으로 꼽고 있다.

이른바 ‘황당 법안’도 적지 않다. ‘퇴근 후 카카오톡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정해진 근로시간 외에 전화,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최고임금법 제정안도 논란거리다.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현행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이 법에 따른 최고 연봉은 4억5000만원을 넘어선 안 된다.

규제는 켜켜이 쌓이고 있지만 규제 완화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일본의 ‘국가전략 특구제도’와 비슷한 규제프리존 법안이 제출됐지만 2년 가까이 논란만 거듭하면서 계류 중이다. 정부가 2004년 ‘한 개의 규제를 도입하면 한 개의 기존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도입한 규제 총량제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정부보다 훨씬 많은 규제 법안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경제계는 무차별적 규제 양산을 막으려면 발의 법안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의원 입법에도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정부의 규제 입법은 규제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입법예고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는 반면 의원 입법은 국회의원 10명만 찬성하면 바로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며 “이런 절차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규제 개혁은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새로운 규제 1개를 도입하면 기존 규제 2개를 없애도록 한 ‘투 포 원(Two for One)’ 규정을 도입했다. 기업들의 새로운 기술 및 서비스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오키나와 등 17개 지방자치단체를 국가전략 특구로 지정해 드론(무인항공기)과 원격의료 등 신사업은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 제정 이후 36년째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수도권 내 공장입지와 규모를 제한하는 규제로 인해 조(兆) 단위 투자가 무산되는 일이 반복돼온 탓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