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체 근로소득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면세자 비중을 줄이는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근로자가 810만 명에 달하는 현실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소득 주도 성장’ 슬로건을 내건 정부가 저소득층의 세 부담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면세자 줄이려면 근로소득공제부터 축소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소득세 공제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조세재정연구원에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 축소 방안 연구를 의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공청회를 통해 면세자 축소에 대한 여론을 수렴한 뒤 정책 추진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은 2005년 48.9%에서 2013년 32.2%까지 낮아졌다가 2014년 48.1%로 급격히 상승했다. 2013년 세법 개정으로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늘자 정부가 2015년 4월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내놓고 공제를 대폭 늘려줬기 때문이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전병목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높은 면세자 비중은 국민개세주의에 위반되며 소득세 관련 재분배 등 정책의사 결정의 왜곡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세 공제제도 개편 방안으로 △표준세액공제 축소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근로소득공제 축소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각 방안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표준세액공제는 근로자가 특별소득공제 등을 신청하지 않았을 때 산출세액에서 13만원을 일괄 공제하는 제도다. 조세재정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표준세액공제를 1만원 축소할 때마다 면세자 비중은 평균 0.9%포인트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총급여 2000만원 이하인 근로자와 1~2인 가구의 세 부담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근로소득세액,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공제 등을 묶어 세액공제 종합한도를 설정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 경우 급여 2500만원 이상에서 7.0%포인트 안팎으로 면세자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주로 중·상위 소득자와 가구원 수가 많은 가구에서 부담이 커졌다.

급여액에서 일정액을 공제하는 근로소득공제를 축소하는 방안을 도입하면 면세자 비중은 2.0~5.7%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세수 증대 효과는 최소 3000억원에서 최대 1조2000억원에 달하고 주로 고소득자의 세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 본부장은 “정책 목표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것이라면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과 표준세액공제 축소가 합리적”이라며 “근로소득공제 축소는 대체로 전 소득계층에 고루 세 부담이 돌아가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소득세율 구조를 정상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참석한 토론자 사이에선 소득세 공제제도를 개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한국납세자협회 명예회장)는 “근로소득공제 축소나 세액공제 한도 설정 등은 다인가구의 세 부담 증가로 귀결되는데 과연 국민이 수용할지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진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필요경비적 공제인 근로소득공제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만큼 축소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부양가족 인적공제 확대 등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규 한국재정학회장(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기치로 내건 마당에 근로자 세 부담을 높이는 개편안을 내놓으면 자칫 ‘연말정산 대란’을 부른 2013년 세법개정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며 “소득세 최고세율이나 법인세를 같이 올리는 등 방법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