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국내 건설회사 해외 개발 프로젝트의 새로운 자금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AIIB 재원을 촉매제로 활용한 프로젝트가 잇따르면서 아시아 인프라 시장에서 1980년대 중동붐에 이은 ‘제2의 해외 건설 붐’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해외 수주 절벽' 건설사들 "AIIB 투자로 '제2 중동 붐' 기대"
◆국내 건설사들, AIIB 자금 유치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대림산업·SK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1월 따낸 터키 ‘차나칼레 현수교 건설 프로젝트’를 위한 글로벌 금융주관사로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을 선정하고 AIIB에 프로젝트 제안서를 보냈다. 2조7000억원가량의 대출을 AIIB를 비롯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금융공사(IFC)에서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 103억리라(약 3조3250억원) 규모의 대형 공사다. 세계에서 가장 긴 3.6㎞의 현수교를 터키 건국 100주년인 2023년에 맞춰 건설하는 사업이다. 프로젝트 관계자는 “자금 조달 구조를 확정하면 AIIB에 최종 투자설명서(IM)를 내고 승인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시설공단·현대건설·GS글로벌 컨소시엄도 지난해 6월 수주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경전철 제2구간 사업(8.9㎞)을 위해 AIIB에 융자를 신청할 계획이다. 철도차량 수출을 비롯해 토목·교량·건축·궤도 시스템 등 한국 철도기술을 총망라한 프로젝트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국내에서 민관 협력으로 해외 철도 인프라 프로젝트를 따낸 첫 사례”라며 “조달 금액은 6000억~7000억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가로 계획된 경전철의 총 길이는 116㎞로 사업비가 6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 컨소시엄은 AIIB 투자를 바탕으로 사업을 성공시켜 추가 구간 수주도 노린다는 복안이다.

◆“‘제2의 중동붐’ 만들자”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 716억달러에 달하던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프로젝트 수주액은 2015년 461억달러, 2016년 282억달러로 급감했다. 해외 건설 부문이 ‘수주 절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강신영 해외건설협회 정책지원센터장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30~40달러까지 하락하면서 국내 기업의 텃밭인 중동 산유국들의 대형 사업 발주가 줄었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플랜트 기업들이 얼마 안 남은 EPC(설계·조달·시공 일괄사업)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수익성도 악화됐다는 설명이다.

건설사들은 개별 프로젝트 위주의 수주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IBRD 등 다자개발은행을 통한 신흥국·개발도상국 인프라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AIIB가 출범하면서 그동안 자본 부족으로 대형 인프라 건설사업을 벌이지 못하던 아시아 저개발국에서 정부 발주, 민관 협력 형태의 대형 사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강 센터장은 “ADB가 독점하다시피한 아시아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1000억달러(자본금 약정 목표액)를 보유한 AIIB의 금융 지원은 ‘단비’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ADB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아시아 인프라 시장의 필요자금 대비 투자 부족분(인프라 갭)은 매년 4590억달러에 달한다.

◆정부, AIIB 자금 조달 지원

정부는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포함한 협의체를 구성해 국내 기업이 해외 프로젝트에서 AIIB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 수자원공사의 조지아 넨스크라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올 4월 AIIB ‘융자 후보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다. AIIB는 오는 9월 이사회에서 8700만달러 규모의 융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국토부 해외건설정책과 관계자는 “AIIB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한국 건설사들의 해외 프로젝트 자금 조달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