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도전 또 도전…연 매출 30억원 올리는 국내 유일의 공식 돼지명인
충남 홍성군 매현리에 있는 비전농장. 입구에 마련된 방문객 소독실에서 방역 절차를 마치고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돼지 7000여 마리가 자라는 축사는 약 3만평(9만9000여㎡) 넓이의 초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풀밭엔 가축 사료로 쓰이는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목초가 자라고 있었다. 김건태 비전농장 대표(64)는 “돼지들에게 양질의 사료를 먹이기 직접 목초를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선정한 ‘돼지 명인’이다. 2013년 축산분야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뽑혔다. 최고농업기술명인은 매년 식량, 채소, 과수, 화훼·특작, 축산 분야별로 1명씩의 대표 농부를 선발하는 제도다. 김 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축산농가의 오래된 고민거리인 가축분뇨 처리 및 악취 문제 해결에 노력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양돈 농부가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된 건 김 대표가 유일하다.

그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고향 홍성에서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새끼를 낳는 종돈 700여 마리를 비롯, 돼지 7000여 마리가 농장에서 자란다. 지난해 비전농장에서 키워서 내보낸 돼지는 1만1000여 마리에 이른다.

◆농사가 싫어 고향을 떠났던 소년

지금은 연간 3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부농이 됐지만 어린 시절엔 농사를 물려받기 싫어 6대째 살아오던 고향을 떠난 적도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넓은 세상에 나가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3~4년간 일했던 직장은 디자인 관련 회사였다. 기관과 기업이 회의 때 사용하는 도표 등을 만들던 곳이었다. “당시 옆 부서에서 노란 원 안에 초록색 잎 세 개가 들어간 로고를 만들었는데 그게 새마을운동 로고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군 생활을 마친 그는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간다. 쌀농사를 짓는 대신 축산업에 뛰어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스물네 살이던 1977년 집안의 논 500평(1650㎡)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닭고기용 육계 사육을 시작했다. 3년 뒤부턴 육계 대신 달걀을 낳는 산란계를 키웠다. 그때 함께 들여온 어미 돼지 한 마리, 암소 한 마리가 오늘날 김 대표를 있게 한 토대가 됐다.
“처음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10년 안에 이루겠다고 목표로 잡은 게 세 개가 있어요. 볏짚 지붕으로 돼 있던 집을 그럴듯한 양옥집으로 새로 짓자, 돼지를 1000마리까지 늘리자, 자동차를 사자. 쉽지 않은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죽기 살기로 하니까 다 이뤄지더라고요. 신혼여행도 포기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창 농장 규모를 키워가던 1990년대 초반 김 대표에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평소 그와 거래하던 제일제당(당시 삼성그룹 계열사) 사료 영업 담당자로부터 특약 대리점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김 대표는 삼성이란 대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그는 “3년 동안 대리점을 운영할 때는 대리점 일이 많아서 목장 일은 아내에게 맡기다시피 했다”며 “대기업의 운영, 관리 기법을 배운 게 농장 규모를 이 정도까지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경·네이버 FARM] 도전 또 도전…연 매출 30억원 올리는 국내 유일의 공식 돼지명인
◆농장 화재로 대부분의 재산 전소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대한한돈협회 홍성군 지부장을 맡은 다음 해인 1994년 축사에 대형 화재가 났다. 어미 돼지 130여 마리와 출하를 기다리던 돼지 1000여 마리 등 그때까지 일궈온 모든 자산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불이 난 다음에 6~7개월 동안은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어요. 신혼여행도 포기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는데…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신이 있다면 나한테 왜 이런 고통을 주는지 원망했죠. 제가 그렇게 반년 넘게 힘들어하니까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이 저를 불러 저녁을 사주면서 이야기했어요. 자기가 원래 하던 일에서 실패한 사람이 다른 일을 해서 성공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돼지를 키우는 일이라고 말해줬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홍성군청 축산과를 찾았다. 담당 공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공무원들은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지원 제도를 알아봐줬다. 김 대표는 2억원을 빌려 다시 축사를 짓고 돼지를 들여왔다. 고모 두 분이 자신들이 살던 집을 농협에 담보로 제공해줬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김 대표는 “다시 농장을 연다니까 어미돼지 30마리를 외상으로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며 “빽도 없는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 도움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양돈농가 최초 맞춤형 사료 개발

김 대표가 비전농장을 연 매출 30여억원의 대형 농장으로 키울 수 있었던 건은 먼저 해외 축산 선진국의 축산기술과 관리기법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93년 한돈협회 홍성군 지부장에 이어 전국 한돈협회 부회장과 회장을 차례로 지낸 그는 해외 축산농가를 둘러볼 기회가 많았다.

그는 외국 농가에서 배운 기술과 기법을 자신의 농장에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자가 배합사료’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양돈업계에 따르면 돼지 사육 원가 중 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다. 사료비 절감 여부에 따라 수익이 크게 달라지는 구조다.

1993년께 미국 양돈농가를 방문한 그는 미국 농부들이 돼지에게 먹이는 사료를 유심히 살폈다. 당시 미국 축산업계에선 농부가 직접 칼슘 등 필수 영양소가 담긴 소량의 프리믹스 사료를 사다가 옥수수 및 대두박(대두 껍질)과 섞어 직접 사료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농부가 직접 맞춤형 사료를 만들기에 비용 절감이 가능했다.

그는 인근 양돈농가들과 함께 3~4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7년 자가 배합사료를 생산하는 홍주골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미국에서 프리믹스 사료를 수입한 뒤 지역 축협가공공장에서 옥수수, 대두박과 섞어 사료를 위탁 생산하도록 했다.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 사료의 시작이었다. “대한민국 사료업계에 떨어진 핵폭탄과 같은 변화였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축산폐수·악취 해결에 도전

축산농장은 가축 분뇨로 인한 환경 오염과 악취 때문에 흔히 기피 시설로 분류된다. 김 대표가 1993년 홍성군 최초로 축산 분뇨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해 배출하는 ‘활성오니 방류시설’을 설치한 것은 축산농가가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활성오니 방류시설은 가축 분뇨와 슬러지가 혼합된 오수를 저장 탱크에 가둔 뒤 박테리아와 미생물을 배양해 분해시키는 시설이다.

2012년에는 악취를 줄이기 위해 ‘BM 활성수’ 기술도 도입했다. 박테리아와 미생물을 배양한 활성수를 하루 0.5톤씩 돼지들에게 먹이고 농장 곳곳에 뿌려 악취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악취를 80%가량 줄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15년 가을엔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농장에서 음악회까지 열었다. 농장에 펼쳐진 목초 위에 무대를 세우고 객석을 마련했다. 돼지농장도 청결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도전 또 도전만이 살길

농장 경영의 성패는 농장주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달렸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국내 축산농가가 살아남기 위해선 사육 동물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고 친환경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2011년 2000평(6600㎡) 규모의 동물복지형 축사 3동을 신축해 평(3.3㎡) 당 돼지 사육밀도를 3.2마리에서 2.5마리로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엔 위해 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을, 2010년엔 무항생제 인증도 취득했다.

1남 2녀를 둔 김 대표는 현재 큰 아들, 막내딸과 함께 농장 및 직거래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축사 주변에서 자라는 약 3만평(9만9000㎡) 넓이의 초원에 농장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기른 목초를 돼지들에게 먹여 사료비를 절감하고 나아가 건초 가공공장을 세워 양돈농가에 사료용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돼지농장과 목초지를 결합한 체험형 관광상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가장 감사한 건 대한민국 충남 홍성군에 태어나 부모님 밑에서 자랄 수 있었던 거예요. 젊은 시절 한돈협회 임원과 대표로 일하면서 선진국의 축산농가들을 직접 둘러보면서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감사하구요. 미국 축산농가에서 배운 프리믹스 사료를 국내에 보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경험 덕분이죠.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미래를 고민하고 앞장서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항상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홍성=FARM 에디터 홍선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