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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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현대중공업의 제2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4월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울산 본사에서 6개 회사로 분사를 기념하는 식수행사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신재생에너지(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와 선박애프터서비스(현대글로벌서비스) 사업을 분사한 데 이어 지난 4월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건설장비(현대건설기계), 로봇(현대로보틱스) 사업도 떼어 냈다. 비(非)조선 분야가 모두 독립법인으로 새 출발하는 것으로, 창립 45주년 만에 가장 큰 변화였다.

구조조정 힘겨웠지만…

1972년 창업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한민국에서 배를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설립한 현대중공업은 1974년 첫 선박 ‘애틀란틱 배런’호 인도를 시작으로 설립 10년 만에 조선 분야 세계 1위에 올랐다. 정 회장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이어받은 전력인프라, 건설장비 사업도 세계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현대일렉트릭은 전력기기 시장 중 변압기 부문에서 ABB, 지멘스, GE 등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현대건설기계는 중대형 굴삭기부문에서 세계 6위에 올랐고 신흥 국가 9곳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세계 1위인 조선 사업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권 부회장은 “중전기와 건설장비를 비롯한 분사 회사들도 각각 세계 ‘톱5’를 목표로 힘찬 도약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후 가장 어두운 터널에 빨려들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가 하락, 경기 침체 등으로 전 세계 발주량이 급감하면서다. 2014년엔 무려 3조24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국내 대형 빅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조선사 가운데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총 3500여 명의 인력을 줄인 가운데 울산 4도크 가동을 중단하는 등 ‘눈물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특히 2014년 11월엔 권 부회장이 임금 전액을 반납하는 등 경영진이 뼈를 깎는 고통 분담에 뛰어들자 직원들도 임금 반납, 휴일 연장근무 폐지 등으로 보조를 맞췄다. 자구계획 대비 실행률도 빅3 가운데 가장 높은 58%에 이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개별 기준 부채비율은 2015년 144%에서 최근 95%로 하락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조6419억원의 영업이익(연결 기준)을 기록해 빅3 중 유일하게 대규모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구조조정 모범생’으로서 조선업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체질 개선에 성공한 것이다. 올 들어서도 지난 1분기에 다섯 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경쟁사와는 차별화된 재무적 안정성을 증명해냈다.

현대중공업은 수주 실적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올려 조선업 반등의 청신호를 알렸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수주 실적으로는 3년 만의 최대치인 총 42척, 25억달러를 수주했다. 특히 시장 가격 대비 높은 수준의 선박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해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중공업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4월 국내 사모펀드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300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사모펀드(PEF)가 조선업에 투자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그만큼 현대중공업그룹의 미래를 밝게 본 것이다.

기업 체질 더 강해졌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4월 ‘제2 도약’을 위한 청사진으로 ‘기술’과 ‘품질’ 중심의 경영을 선포했다. 2021년까지 기술개발에 3조5000억원을 투자하고 설계 및 연구개발(R&D) 인력을 1만명 확보하며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불안정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통해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신기술 개발을 위한 설계 및 R&D 인력은 현재 4000명에서 5년 안에 1만명으로 늘어난다. 이를 위해 기존 공채제도뿐만 아니라 인턴, 장학생 선발, 찾아가는 채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수 인재를 영입할 예정이다. 또 신기술 R&D를 통해 성과를 창출한 직원과 업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인재에 대해선 파격적인 승진과 처우를 보장하고 해외 유학 등을 통해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지난 4월 분사한 4개사(중공업·일렉트릭·건설기계·로보틱스)에 각각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부사장급으로 임명해 신제품 개발 추진에서부터 기술전략 수립, 연구인력 선발, 육성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친환경 선박과 스마트십 개발, 스마트 야드 구축 등에 2조500억원을 투자해 ‘따라올 수 없는’ 세계 1위 기업에 오른다는 계획이다. 현대일렉트릭과 현대건설기계는 각각 6800억원, 6600억원을 투자해 세계 5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로보틱스는 1100억원을 투자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정용 로봇 사업 확대와 부품 공용화 개발, 클린룸 신축 등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