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홍준표·안철수 공약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착수

"정부·정치권, 국민연금 통해 입김 행사 가능"
중소 기관투자가 가세…'의결권 쏠림' 우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 국민연금, 대선후보에 코드 맞췄나…상장사 350여곳 '긴장'

국내 기관투자가 중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곳은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없다. 국민연금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제도 도입을 미뤄온 중소형 기관투자가까지 가세해 자본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당장 국민연금만 해도 국내 상장사(2200여개)의 3분의 1인 750여개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이 중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만 350여개에 달한다. 여기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기업이 모두 망라돼 있다.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국내 대표기업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가 돼도 국민연금 목소리 커져

국민연금은 그동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고 국내 기관을 상대로 가입을 독려하고 있는 데다 주요 대선후보까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공약을 내걸면서 국민연금도 방향을 틀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공약집에서 △총수 일가에 의한 기업 불법·편법 지배 및 상속 △소액 주주 이익 침해 △사외이사 임면 등의 사안에 대해선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이를 위해 주주권 행사 원칙과 기구, 절차를 법제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국민연금의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주주권행사 전문위원회로 개편하고, 이를 법적 기구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기업 합병 등 중요한 안건은 반드시 주주권행사 전문위원회 심의와 승인을 받은 뒤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주주권행사 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이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 등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했다.

누가 당선되든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선후보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공약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국민연금이 ‘이럴 바엔 차라리 먼저 나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관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전략까지 관여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기업 경영에 상당한 압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매년 90% 안팎의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에 ‘거수기’라는 비판이 따라붙는 이유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이런 관행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묻지마 찬성’에서 벗어나 투자 기업의 경영 전략과 성과, 위험 관리, 지배구조 등 핵심 경영사항 전반을 돈을 맡긴 국민 입장에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선 주주 제안과 소송 참여 등 ‘주주 행동주의’에 버금가는 활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책임 투자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국민연금이 재벌을 규제하는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단기 이익을 위해 상장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의결권 행사 때 책임 회피를 위해 의결권 자문사에 과도하게 의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기업 주주총회 안건 담당자는 “의결권 자문사가 상장사의 로비 대상이 되고, 일종의 권력 기관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형 기관투자가가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결정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의결권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제도 도입 시 법률적인 제약과 운용상 제약, 공적연금이라는 특수성에 따른 제약까지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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