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사내 하도급'…또 법원발 산업현장 혼란
통상임금의 범위 확정, 근로시간 단축과 휴일근로수당 중복할증 인정 여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고용 의무…. 하나같이 노사관계의 안정성을 뒤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이슈’임에도 입법이나 판례로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아 산업현장에 짙은 불안감이 드리우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직접고용 문제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고용 범위를 확대하라는 판결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보호를 외치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물류, 출고 등 간접 공정에 종사하는 하도급 근로자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직접 생산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에만 정규직으로 인정한다는 취지의 2015년 2월 대법원 판결보다 직접고용 대상을 훨씬 넓힌 것이다.

해당 기업으로선 충격적인 판결이다. 생산직뿐만 아니라 생산현장을 지원하는 근로자까지 고용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도 이 판결을 놓고 논란이 나올 정도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한 현장조직은 판결 직후 ‘산업계 현실을 모르는 불법파견 판정, 정규직 고용불안 심각’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에서 “현대차 울타리 안에 발만 담그고 차 한 잔만 해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이 복잡한 업종 특성 때문에 하청업체를 많이 이용하는 조선업종도 비정규직 고용 의무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지난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파견 정황을 보여주는 물증”이라며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은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지난달 말까지 도급일을 하다 폐업한 1차 하청업체가 작성한 ‘일일 작업 허가·지시 및 결과’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불법파견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업무를 철저히 분리했는데도 불법파견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재계는 올해 나올 가능성이 높은 대법원의 판단을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이 공정별·개인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조업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고용시장 경직성이 더욱 심해질 뿐만 아니라 비슷한 소송이 쏟아져나와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에 따르면 사내하도급 제한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인건비 추가 부담은 2013년 기준으로만 연간 6조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300인 미만 기업까지 포함하면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통상임금 등 노동 문제를 법원 판결로만 풀려고 하는 ‘사법화’로 인해 정책 예측의 불안정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울산=하인식 기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