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에 따라다니는 꼬리표 중 하나는 껌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껌 장사로 시작해 다른 사업으로 확장했다. 일본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제과기업으로 성장했고, 한국에선 연매출 92조원의 5대 그룹으로 우뚝 섰다. 그 중심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있었다. 신 총괄회장이 껌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혁신의 과정을 다섯 장면으로 추려봤다.

(1) 대나무에 매단 풍선껌으로 대박

일본은 1945년 8월15일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일본에 건너온 지 3년째이던 신 총괄회장은 큰 사업 기회를 봤다. 패전국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병사들을 통해 일본 사람들에게 흘러간 풍선껌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매달아 포장했다. ‘장난감 같은’ 롯데 풍선껌은 대박을 쳤다.

(2) ‘입 속의 연인’이란 명카피 탄생

1970년대 서울 거리에서 롯데제과 판매원들이 껌 판촉행사를 하고 있다.
1970년대 서울 거리에서 롯데제과 판매원들이 껌 판촉행사를 하고 있다.
껌으로 사세를 넓힌 신 총괄회장은 초콜릿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위스 출신 전문가 막스 브라크를 영입해 공장 설계부터 제품 생산까지 전부 맡겼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가나초콜릿. 신 총괄회장은 1964년만 해도 파격적인 ‘입 속의 연인’이란 광고 문구를 생각해냈다. 롯데는 가나초콜릿으로 당시 1위인 메이지를 제치고 일본 최고 제과업체가 됐다.

(3) 성공 경험을 한국에 접목

1967년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했다. 해외 자본에 목말랐던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 기업인인 신 총괄회장에게 투자를 제의했다. 신 총괄회장은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껌과 과자, 음료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한국 내 최대 제과업체로 성장했다.

(4) 관광 불모지에 호텔업 투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오른쪽 두 번째)과 김대중 대통령(세 번째) 이 1990년 3월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개관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오른쪽 두 번째)과 김대중 대통령(세 번째) 이 1990년 3월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개관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1973년까지 서울엔 변변한 호텔이 없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서울에 국제적인 호텔을 건설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옛 반도호텔과 국립도서관 땅에 고층 호텔을 지을 사업자를 찾았다.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성공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이 나섰다. 1974년 롯데가 단독 응찰했다. 정경유착이란 얘기도 나왔지만 신 총괄회장은 밀고 나갔다. 6년간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당시 최고층인 38층 관광호텔을 지었다. 1987년엔 잠실에 초대형 투자를 결정했다. 30년 뒤 123층 높이의 롯데월드타워가 세워졌다.

(5) 소비재에서 석유화학으로 확장

신 총괄회장은 한국에서 기간산업을 하고 싶었다. 맨 처음 관심을 가진 분야는 철강이었다. 포항제철에 기회를 뺏긴 뒤 석유화학으로 눈을 돌렸다. 1979년 호남석유화학 민영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은 지난해 처음으로 LG화학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