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상황별로 따져 신중하게 결정할 것"
"정부로선 최선이더라도 투자자 입장 다를 수 있어"


정부가 23일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으면서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내달 초 열릴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 집회(회사채 1조3천500억원·CP 2천억원)에서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연장하는 채무재조정을 성사시킨 뒤 신규 자금을 투입한다는 복안이다.

채권자 보유 사채(CP 포함)의 50%를 주식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3년간 거치기간을 둔 뒤 3년간 분할상환하는 방법이다.

만기 연장분에 대한 금리는 3% 아래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개별 기관투자자로는 가장 많은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날 정부의 발표 직후 바로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방안이 현재로써는 최선의 방안인 것을 이해하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상황별 손익을 잘 따져 투자위원회를 거쳐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합병에 찬성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국민연금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채무재조정안에 찬성했다가 또 특정 대기업 살리기에 국민 노후자금이 동원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공단에 1천억원대 손해를 입힌 배임 혐의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한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개인이 배임 혐의까지 뒤집어쓸 수 있는 의사 결정을 강요할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채무조정안에 반대한다고 해서 기금 운용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채무조정이 무산되고 정부가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을 가동하면 일정 기간 정상적 경영이 불가능해 사실상 대우조선의 청산으로 귀결될 수 있고, 이는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한 학습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우리로서는 정말 쉽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처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 대우조선해양 발행 회사채 현황(한국예탁결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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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명 │ 발행일 │ 만기일 │ 발행잔액 │표면이율│신용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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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6-1 │2014-04-21│2017-04-21│4천400억원│ 3.369%│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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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4-2 │2012-07-23│2017-07-23│ 3천억원│ 3.73%│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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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5-2 │2012-11-29│2017-11-29│ 2천억원│ 3.5%│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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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7 │2015-03-19│2018-03-19│3천500억원│ 3.276%│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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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6-2 │2014-04-21│2019-04-21│ 600억원│ 3.789%│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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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재조정안이 통과하면 정부는 수월하게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프리패키지 플랜(P-플랜)'을 가동하겠다며 사채권자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당장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하는 정부의 채무조정안이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채권자 집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채무조정이 성사되려면 총 발행채권액 ⅓이상을 가진 채권자들이 참석해 참석 금액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3천800억원 정도의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입장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전체 대우조선 회사채 발행잔액의 30%에 육박하고 CP까지 포함한 금액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 회사채(CP 포함) 1천800억원 정도를 보유한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와 3천억원을 보유한 금융투자업계까지 포함하면 사채권자 집회 정족수인 3분의 1은 물론 절반을 훌쩍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우정사업본부가 보유한 회사채의 상당 부분이 당장 다음 달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4천400억원에 포함된 것으로 안다"면서 "사채권자 채무재조정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hyunmin6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