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한창일 때 일본행…수사 마무리되고 잊혀질만하자 귀국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사실상 '셋째 부인'인 서미경(58) 씨가 일본 도피생활 9개월 만에 귀국했다.

서 씨는 지난해 6월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일본으로 출국, 검찰의 거듭된 소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버티다 20일 열린 첫 공판기일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 씨는 그동안 신 총괄회장과의 사이에 낳은 외동딸 신유미(34) 씨의 도쿄(東京) 자택과 도쿄 인근 별장 등을 오가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 고문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유미 씨는 수 년 전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뒤 주로 일본에 머물며 생활해왔다.

지난해 검찰의 서슬 퍼런 재산 몰수 압박에도 버티며 귀국하지 않던 서 씨가 첫 공판기일에 맞춰 돌연 귀국한 것은 사법당국의 거듭된 압박과 함께 신변처리 등에 대해 모종의 조율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기소까지 이뤄져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된 데다 재판 과정에서는 인신이 구속될 가능성이 크지 않아 지난해와 달리 귀국에 대한 부담이 덜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는 어떻게든 구속만은 면해보고자 했던 서 씨의 '시간끌기' 작전이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세간의 시선은 대통령 탄핵과 차기 대선전, 하루 앞으로 다가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등에 집중돼 있어 더이상 서 씨나 롯데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관심이 지난해만큼 높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검찰 수사가 한창일 때 일본으로 도피해 시간을 끌다가 사건이 세간에서 잊혀질 때쯤 슬그머니 귀국한 서 씨의 이런 전략은 13년 전 신 총괄회장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피하기 위해 구사했던 전략과 판박이다.

신 총괄회장은 노무현 정권 시절 주요 대기업에 대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당시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지켜오던 이른바 '셔틀경영'을 중단하면서까지 장기간 일본에 머물며 검찰의 예봉(銳鋒)을 피해갔다.

'셔틀경영'이란 매년 홀수 달은 한국에,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물며 한일 양쪽의 경영을 챙겨왔던 신 총괄회장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는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소환 조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자 2003년 10월 일본으로 출국, 이듬해 8월 조용히 귀국할 때까지 10개월 동안 '셔틀경영'을 중단했다.

신 총괄회장이 슬그머니 귀국한 2004년 8월은 이미 대선자금 수사가 일단락된 뒤였기 때문에 그는 검찰 소환을 회피할 수 있었다.

재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신 총괄회장의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에 롯데 사람들이 검찰 수사 등 불리한 일이 터지면 재빨리 도일(渡日)해 시간을 끌다가 잠잠해지면 조용히 귀국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가 재일교포여서 일본에도 근거지가 있는 롯데는 전략적으로 불리한 일이 터지면 사건 연루자들이 일본으로 도피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다"며 "효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롯데가 가진 '일본 기업'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