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소외된 유통규제 5년] 골목상권 보호만 외치며…소비자 불만 외면한 '불통' 유통규제
유통 규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법안 만들 때 소비자들 의견은 들어봤냐”라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소비자 의견을 어떤 방식으로 반영했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얼버무렸다. 간혹 “몇몇 지역구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의원도 있었다. 재차 “지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공청회를 했나”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건 안 해봤다”고 물러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작년부터 유통 규제 법안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지난해 총선 이후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수만 20개다. 다른 의원이 유통 규제를 만들면 경쟁적으로 비슷한 법안을 또 발의해 생긴 결과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졸속 입법”이라고 지적한다. 목소리 큰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얘기만 들을 뿐 다른 이해 관계자들의 주장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조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응집력 있는 소수의 입장만 대변한 셈이다.

이 과정에선 법이 제정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쏙 빠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소상공인들과 달리 뭉치지 못한다. 입법 과정에서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다.

소비자가 소외됐다는 사실은 한국경제신문이 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마크로밀엠브레인과 함께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회가 추진하는 대형마트 규제 확대에 찬성하는 비율은 26.9%에 불과했다.

백화점과 아울렛도 대형마트처럼 주말에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방안에도 34.5%만 찬성했다. 자유한국당이 추진 중인 편의점 심야 영업 금지를 지지하는 비율은 6.6%에 그쳤다.

2012년 3월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행한 대형마트 규제의 효과에 대해서도 대다수 소비자는 물음표를 던졌다. 대형마트가 문 닫는 일요일에 전통시장을 간다고 답한 비율은 10.7%밖에 안 됐다. 편의점(41.6%)과 문 닫지 않는 다른 마트(14.5%)를 찾는 소비자가 더 많았다. ‘안 사고 참는다’는 비율도 23.3%에 달했다. 우려했던 소비증발 현상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대해서도 10명 중 8명은 휴업일을 무조건 평일로 바꾸거나(42.5%) 지역 상인과 협의해 조정해야 한다(36.5%)고 답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런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조기 대선이 끝나면 더불어민주당 등은 지금보다 더 강화된 유통 규제를 들고나올 계획이다. 명분은 대형마트뿐 아니라 아울렛과 복합쇼핑몰로부터 전통시장을 비롯한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소상공인 등 유통상들을 보호하면 할수록 더 큰 유통마진을 부담하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정인설 생활경제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