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홍라희 관장, 비자금 파문에 아들 구속 겪은 미술계 큰손
구매력과 안목, 인맥 등 바탕으로 '미술계 최고 영향력'

6일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에서 전격 사퇴한 홍라희 관장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수년간 영향력 1위를 지킨 '큰 손'이다.

홍관장이 두 미술관 관장직을 내려놓은 것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이 결정적인 계기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두 미술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홍관장은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장녀로 196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결혼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을 자녀로 뒀다.

경기여고,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관장은 미술에 대한 취미와 자질을 바탕으로 삼성 창업주인 시아버지 고(故)이병철 전 회장이 해방 이후부터 시작한 미술품 컬렉션을 지켜봐 왔다.

1995년부터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맡았다.

특히 2004년에는 근현대미술과 고미술을 아우르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 국내 최고의 사립미술관 관장이자 세계적인 컬렉터로서 본격적으로 미술계에서 활동했다.

삼성 일가의 성 '리'(Lee)와 미술관(Museum)의 어미 '움'(um)을 조합해 이름 지은 리움은 마리오 보타와 장 누벨, 렘 콜하스 등 유명 건축가가 지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고, 소장품은 개관당시 이미 1만 5천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관장은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의 미술품 수집파워와 최신 미술계 트렌드를 이끄는 기획전시, 재력과 인맥, 미술품을 보는 안목 등을 바탕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유지했다.

홍 관장이 관심을 보인 작품의 가격이 급등하고 화랑가에서도 유행되곤 했다.

홍관장은 미술잡지 아트프라이스 등이 선정하는 '한국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 인물' 설문조사에서 2005년 이후 단골 1위를 차지했다.

오랜 세월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홍관장은 몇차례 논란과 의혹의 중심에 섰다.

대표적인 사건은 2008년 삼성비자금 사건이다.

홍관장은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폭로로 출범한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비자금을 이용해 수백억원대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의혹을 조사받았다.

당시 '행복한 눈물'(90억원 상당) '베들레햄의 병원'(100억원 상당) 등 고가 미술품을 서미갤러리 등을 통해 해외 경매시장에서 구입한 경위와 자금 출처, 에버랜드 창고에서 발견된 미술품의 실소유주 및 소장 경위 등을 추궁당했으나 무혐의 처분됐다.

그해 남편 이건희 회장의 그룹 회장 퇴진과 함께 리움 관장직에서 물러난 홍 관장은 2년 9개월만인 2011년 3월 리움 관장으로 복귀했다.

2011년에는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가 홍관장을 상대로 그림값 50억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취하하기도 했다.

홍 관장은 2015년 5월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고 그해 7월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미술관 운영에 전념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주변에 "참담한 심정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편 이건희 회장이 3년째 와병 중인 가운데 아들 이재용 부회장까지 수감된 상황에서 관장직을 유지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하는 듯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 관장이 복귀 6년 만에 사퇴하면서 리움 미술관은 홍 관장의 후임이 확정되기 전까지 당분간 홍 관장의 동생인 홍라영 총괄부관장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ai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