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자율과 책임이 중국 창업열기의 토대
세계가 신성장동력 발굴에 야단법석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창업열기다. 1월에 개최된 세계 최대 전자쇼 CES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중국 선전을 방문해 전문가들을 접촉한 결과 중국의 창업열기가 실제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알게 됐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연구개발(R&D) 여력이 있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된다. 러시아나 중국과 같이 아직도 사회주의 전통이 남아있는 국가가 한 부류다. 중앙정부 주도하에서 필요하다면 상당한 정도의 자원 동원이 수월한 국가다. 또 한 부류의 국가는 미국 등 전통적인 초일류 국가다. 경제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좋아 어느 정도의 자금은 버린 셈 치고 투입할 수 있다. R&D는 그만큼 성공률이 높지 않은 데다 시간을 길게 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성과에 집착한다고 성공률이 높아지지 않는다.

중국은 특이하게도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아직도 공산당이 필요에 의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 또 상당한 정도의 전략자금을 버린 셈 치고 나눠 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다. 중국의 국가 R&D 규모는 2000년 896억위안에서 2016년 1조5000억위안(약 250조원)으로 부쩍 커졌다. 절대액이 엄청나다. 대(對)국내총생산(GDP) 비중도 동기간 내 0.9%에서 2.1%로 높아져 정부의 정책의지를 잘 읽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은 창업단지 책임자에게 거의 무한대의 자율성을 부여, 각종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에는 책임이 무겁다. 성공하면 승진뿐 아니라 금전적 보상도 따른다. 책임자에게 전권을 주고 거기서 활동하는 업자들이 필요한 것을 거의 다 해 준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과거 사례를 따지거나, 특구 내 지방이기주의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쉽게 볼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일부 지자체가 변화 움직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책·비즈니스 문화가 완전히 성숙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중국은 자체 인력풀이 충분하다. 대학을 졸업한 우수 인력이 넘쳐난다. 특히 경험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유학생 인력풀도 풍부하다. 1978년 덩샤오핑은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학자유화 조치를 취했다. 유학생은 누적기준 400만명을 넘는다. 이 유학생풀은 최전성기인 40~50대가 주력이다.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귀국이 늘고 있다. 대체로 2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토착 창업인사들이다. 아직도 기회를 엿보고 몸을 던지는 모험정신이 살아 있다.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발 1세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교훈이 있다. 정규교육에 너무 의존하지 말자는 메시지다. 중국의 대표적 창업단지는 베이징 중관춘과 선전의 창업특구다. 중관춘 소재 기업에는 일류대학 출신 인재들이 득실거린다. 반면에 선전에는 훨씬 시장경제적 분위기에 익숙하고 눈썰미가 있는 창업가들이 많다. 성과 면에서 오히려 선전이 낫다는 말이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다양성과 정부 후원이다. 우리 반도체 제품의 경쟁력은 높은 수율에 있다. 중국의 경우 완성도가 70% 정도만 된다고 하더라도 갖다 쓸 2급 시장이 있다. 정부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알선해 주고 있다. 제품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정부가 수요처를 발굴해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계와 경쟁하는 일류회사는 필요한 제품을 수입해 쓰지만 차상급품도 중국 내에 자체 시장을 갖고 있다. 자연히 후발 창업기업들에 성공의 시간 또는 패자부활전의 시간(기회)을 제도적으로 주고 있다고 하겠다.

정영록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