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발행액 2배로 증가
50만원 이상 고액 상품권 16% 늘어…돈세탁 등 불법 악용 우려


지난해 백화점·대형마트·정유사 등에서 발행하는 상품권 규모가 9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품권 시장의 덩치가 커지면서 자금세탁 등 불투명한 거래에 상품권이 이용되는 일이 없도록 규제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기업들의 백화점 상품권 구매가 크게 늘어 규제를 피하는 수단으로 상품권이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조폐공사가 발행한 유통사·정유사·전통시장 등의 상품권 발행규모는 9조552억원으로 전년(8조355억원)보다 1조197억원(12.7%) 증가했다.

조폐공사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전체 상품권의 90% 이상을 발행하는 곳이다.

상품권 발행규모가 9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2011년 4조7천800억원에서 5년 만에 2배 가까이 커진 것이다.

상품권 발행규모는 2012년 6조2천200억원으로 연간 30% 급증하더니 2013년에도 8조2천700억원으로 33% 늘었다.

2014년엔 6조원대로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10만원권 이상 고액상품권 발행액은 지난해 5조2천83억원으로 전체의 57.5%를 차지했다.

특히 액면가가 50만원 이상인 고액의 유통사 상품권 발행액은 1조3천570억원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유통사의 10만원짜리 상품권 발행액도 3조5천500억원에서 3조7천300억원으로 5% 늘었다.

백화점 등 유통사 입장에서 상품권 발행은 신규 매출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 '효자'다.

사용되지 않아 이익을 남기는 때도 있다.

소비자로선 상품권의 용처가 갈수록 확대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액면가보다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울 때 상품권 발행 증가는 지하경제가 확대되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상품권은 정부 부처 인가를 받아야만 발행할 수 있었지만 19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에는 1만원권 이상 상품권을 발행할 때 인지세를 내는 것을 빼면 금융당국 감독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액면가로 따졌을 때 연간 9조원 이상의 상품권이 시중에 풀렸는데도 한국은행의 통화량 산정에서는 제외된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쓰는지도 파악할 수 없어 리베이트나 뇌물, 기업 비자금 조성 등에 악용되기도 한다.

박광태 전 광주시장은 법인카드(업무추진비 카드)로 20억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산 뒤 이를 되팔아 현금을 챙기는 '상품권깡'을 했다가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3개월 간(2016년 4분기) 법인카드로 구매한 백화점 상품권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나자, 기업이 법인카드를 접대비 등 결제에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돼 상품권 이용을 늘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경제정의실천을위한시민연합(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에서는 상품권법 입법 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권태환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기업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사고 경비처리를 한 이후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며 "상품권의 사용 시점과 사용처가 명확할 때만 경비처리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