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쎄는 아저씨들 피우는 담배 아닌가요? 아재 인증이죠."

흡연 경력 10년차인 30대 초반 한 직장인의 말입니다. 실제로 에쎄는 중장년층을 대표하는 담배 브랜드입니다. 현재 국내 초슬림 담배 시장의 85~90%를 점유하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이 사실 아시나요. 에쎄는 원래 아저씨가 아닌 '아가씨'를 겨냥한 제품이라는걸요.

1996년 에쎄 클래식 광고. (자료  = 컨셉추얼)
1996년 에쎄 클래식 광고. (자료 = 컨셉추얼)
1996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초슬림 담배인 에쎄 클래식 출시 광고를 보시죠.

담배 광고보단 마치 음악회 포스터처럼 보입니다. 20~30대 여성층을 겨냥해 '얇고 자극이 적으면서 부드럽고 순한 새 담배'라는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에쎄는 이탈리아어로 '아가씨들'이라는 뜻입니다. 제품 이름만 봐도 20~30대 여성을 겨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던 에쎄가. 왜 아재담배의 대명사가 된 걸까요.

◆ 부진한 여성 흡연율에 고객 바꿔

에쎄 출시 당시로 돌아가 보죠. 1995년 즈음 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를 필두로 한 외국 담배회사들이 국내에 버지니아 슈퍼 슬림 레드, 휘네스 등 20~30대 여성을 겨냥한 슬림 담배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성공 전략을 한국에 고스란히 가져온 겁니다.

1986년 담배시장을 개방한 일본에선 1990년대 중반까지 성인 여성 흡연율이 지속적으로 올라갔습니다. 특히 여성 전용 담배로 불렸던 초슬림 담배의 성장세가 엄청났죠.

1987년 4500만 달러에 그쳤던 버지니아슬림의 일본 내 판매량은 1991년 1억4400만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달랐습니다. 여성 흡연율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1985년 7.8%였던 여성 흡연율은 1999년 4.4%까지 줄었습니다.

그 이유는 50대 이상 여성 연령층의 흡연율이 추락한 데 있습니다. 50대 여성의 흡연율은 1985년 16.4%에서 2000년 0.8%로, 60대 여성의 흡연율은 32.5%에서 1.9%로 뚝 떨어졌습니다. 반면 20대 흡연율은 1.3%에서 5.8%로 늘긴 했지만, 고령층에서 감소한 여성 흡연율을 상쇄하긴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자 담배회사들은 전략을 바꿨습니다. 젊은 여성층을 뒤로 하고, 저타르 담배 이미지를 부각해 건강을 생각하는 남성층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KT&G, 에쎄라이트로 웰빙 공략

KT&G는 2000년 에쎄의 이미지를 바꿔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를 강타한 웰빙 바람에 주목했죠.

이 같은 분위기는 4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 거셌습니다. 20~30대엔 독한 담배를 피워대던 이들도 40대가 넘어서면서 건강 관리를 위해 '순한 맛'을 찾았습니다.

끊기는 힘들고 조금이라도 건강한(?) 흡연을 하기 위해서였죠.

웰빙 바람이 한창이던 2002년 에쎄 라이트는 에쎄 클래식(타르 6.5mg)보다 타르 함량을 낮춘 4.5mg으로 출시됐습니다.

이후 에쎄 라이트는 중장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부동의 1위 '디스'를 끌어내리고 왕좌를 차지합니다. 이 결과 초슬림담배는 뜻하지 않게 '아재담배'로 굳어지게 된 거죠.

하지만 최근 담배회사들은 '초슬림담배=아재담배'라는 이미지에 부담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 연령층을 겨냥해선 소비자층을 넓히는 데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캡슐 필터를 적용한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아재담배'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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